이 두 박씨때문에 우리가 지금 고깃국에 잇팝을 배가터지게 잘먹고 잘사는것을 우리 후손들이 통진당 사람들, 새민련 사람들이,
불그스레한 여당 국회의원들이 알아야한텐데........
각하! 불초(不肖) 박태준, 각하의 명을 받은 지 25년만에 포항제철 건설의 대역사를 성공적으로 완수하고 삼가 각하의 영전에 삼가 보고를
드립니다.
포항제철은 '빈곤타파(貧困打破)와 경제부흥(經濟復興)'을 위해서는 일관제철소 건설이 필수 적이라는 각하의 의지에 의해 탄생되었습니다. 그 포항제철이 바로 어제, 포항, 광양의 양대 제철소에 조강생산 2,100만톤 체제의 완공을 끝으로 4반세기에 걸친 대장정(大長征)을
마무리하였습니다.
'나는 임자를 잘 알아. 이건 아무나 할 수 있는 일이 아니야.
어떤 고통을 당해도 국가와 민족을 위해 자기 한몸 희생활 수 있는
인물만이 이 일을 할 수 있어. 아무 소리 맡아!'
1967년 9월 어느 날, 영국출장 도중 각하의 부르심을 받고 달려온 제게
특명(特命)을 내리 시던 그 카랑카랑한 음성이 지금도 귓전에
생생합니다. 그 말씀 한마디에, 25년이란 긴 세월을 철(鐵)에 미쳐,
참으로 용케도 견뎌왔구나 생각하니 솟구치는 감회를 억누를 길이
없습니다.
돌이켜보면 참으로 형극과도 같은 길이었습니다.
자본도, 기술도, 경험도 없는 불모지에서 용광로 구경조차 해본일이
없는 39명의 창업요원을 이끌고 포항의 모래사장을 밟았을 때는
각하가 원망스럽기도 했습니다. 자본과 기술을 독점한 선진철강국의 냉대 속에서 국력의 한계를 절감하고 한숨짓기도 했습니다. 터무니
없는 모략과 질시와 수모를 받으면서 그대로 쓰러져 버리고 싶었던
때도 있었습니다.
그때마다 저를 일으켜 세운 것은 '철강은 국력'이라는 각하의 불같은 집념, 그리고 열세 차 례에 걸쳐 건설현장을 찾아주신 지극한 관심과 격려였다는 것을 감히 말씀드립니다. 포항제철소 4기 완공을 1년여
앞두고 각하께서 졸지에 유명(幽明)을 달리하셨을 때는 '2,000만톤
철강생산국'의 꿈이 이렇게 끝나버리는가 절망하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저희는 '철강입국(鐵鋼立國)'의 유지를 받들어 흔들림없이
오늘까지 일해 왔습니다. 그 결과 포항제철은 세계 3위의 거대
철강기업으로 성장하였으며, 우리 나라는 6대 철강대 국으로
부상하였습니다.
각하를 모시고 첫삽을 뜬 이래 지난 4반세기 동안 연 인원 4천만명이 땀 흘려 이룩한 포항 제철은 이제 세계의 철강업계와 언론으로부터 '최고의 경쟁력'을 지닌 철강기업으로 평가받 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것이 어찌 제 힘이었다고 할 수 있겠습니까?
필생의 소임을 다했다고 생각하는 이순간, 각하에 대한 추모의 정만이 더욱 새로울 뿐입니 다.
"임자 뒤에는 내가 있어. 소신껏 밀어 붙여봐"하신 한마디 말씀으로
저를 조국 근대화의 제단으로 불러주신 각하의 절대적인 신뢰와
격려를 생각하면서 다만 머리숙여 감사드릴 따 름입니다.
각하!
염원하시던 '철강 2,000만톤 생산국'의 완수를 보고드리는 이
자리를, 그토록 사랑하시던 근영·지만군이 지켜보고 있습니다.
자녀분들도 이 자리를 통해 오직 조국근대화만을 생각하시던 각하의 뜻을 다시 한번 되새기며, 각하의 유지를 받들기 위해 더욱 성실하게 살아갈 것이라 맏습니다. 저 또한 옆에서 보살핌을 게을리 하지 않을 것을 다시 한번 약속드립니다.
각하! 일찍이 각하께서 분부하셨고, 또 다짐드린 대로 저는 이제 대임을
성공적으로 마쳤습니다. 그러나 이 나라가 잔정한 경제의 선진화를 이룩하기에는 아직도 해야 할 일들이 산적해 있 습니다.
'하면 된다'는, 각하께서 불어넣어주신 국민정신의 결집이 절실히
요청되는 어려운 시기입니다.
혼령이라도 계신다면, 불초 박태준이 결코 나태하거나 흔들리지 않고 25년전의 그 마음으 로 돌아가 '잘 사는 나라' 건설을 위해 매진할 수 있도록 굳게 붙들어 주시옵소서. 불민한 탓으로, 각하 계신 곳을 자주 찾지 못한 허물을 용서해 주시기 업드려 바라오며,
삼가 각하의 명복을 빕니다. 부디 안면(安眠)하소서!
1992년 10월 3일 불초(不肖) 태준(泰俊)올림
<1992년 10월 3일> [박태준의 故 박대통령 묘소 참배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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