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대한민국

숙명을 거부한 위대한 한국

철산. 케네디 2016. 4. 26. 10:05
<숙명을 거부하다>를 읽고:
지옥을 천국으로 만든 보통사람들의 위대한 생애
진짜 ‘헬조선’에서 태어나, 불굴의 투지로
‘천국 다음에 한국’을 만든 부모세대의 이야기!

趙甲濟   


 

천안함 水中작업 UDT 현장지휘관의 56일간 死鬪 <爆沈 어뢰를 찾다!>정호승 시인의 추천! 생존과 자유를 찾아온 詩 <꽃 같은 마음씨>

 


趙甲濟의 讀後評

1. 대한민국 현대사를 체험한 다양한 職種의 국민들의

집단 증언으로서 '國民實錄'이라 할 만 하다.


2. 앞으로 이런 실록이 축적되어야 계급투쟁론적

민중사관에 의한 역사 조작을 막을 수 있다.

역사전쟁은 기억의 전쟁, 기록의 전쟁이기도 하다.

국민의 역사를 만들어야 한다.  

3. 체험手記는 한국 現代史가 생존투쟁의 역사였음을 말해준다.

국가는 체제를 지키기 위하여, 국민들은 가족과 생계를 지키기 위하여

 싸우면서 일하고 일하면서 싸웠다.

벼랑에 몰린 존재는 생존투쟁의 의지를 잃지 않을 경우 

초인적 힘을 발휘, 逆轉의 드라마를 만든다.

체험 수기의 필자는 거의가 逆轉劇의 주인공들이었다. 


4. 고생 끝에 좋은 세상을 만난 경우가 많은 성공 스토리였다.

희생적 부모와 상관, 그리고 지도층,

무엇보다도 나라가 있었기에 가능하였다. 


5. 체험 수기의 필자들은 한국의 근대화가 만들어낸 새로운 주인공들이다.

봉건체제에선 천시를 받았거나 아예 존재할 수 없었던 職種의

인물들이 새 역사 창조의 主役이 되었음을 알 수 있다.

선비나 양반 형 지식인들이 다스리던 전통에서,

군인, 기업인, 상사맨, 과학자, 기술자, 여성,

그리고 해양인들이 현대사 70년이란 무대의 주연급으로 새로 등장하였다. 


6. 필자들은 대체로 노력한 만큼 보상을 받았다.

法治와 경쟁 체제가 미흡하나마 작동하였고 나라가 전체적으로

발전하였으므로 順風을 만난 배처럼  大勢를 따라 발전한 덕분이다.   


7. 한국 현대사는 건국 호국 산업화 민주화의 과정을 거치면서

해양정신, 尙武정신, 자주정신, 기업가 정신을 재발견하였다.

4大 성공요인으로서 자유민주주의 제도, 희생적인 지도층, 근면한 국민,

그리고 미국의 결정적 도움이 있었다. 

지식인이 권력을 독점하던 시대가 가고 군인, 기업인, 과학기술자,

여성이 중심적 역할을 하는 새 시대를 만든 것이다. 


8. 전쟁과 군대가 한국인의 운명에 가장 큰 영향을 끼쳤음을 새삼 실감할 수 있었다. 

모든 국민들의 삶과 의식 속에 남아 있는 한국전쟁의 영향은 통일이 되어야 정리될 것이다. 


9. 대한민국의 발전은 그러나 미완성 상태이다. 고칠 것이 많고 반성할 점도 많다.

물질적, 이념적 경쟁에 함몰된 탓에 文明의 기초인 개개인의 교양이 약해지고 있다.

한글專用은 韓國語를 반신불수로 만들어 교양의 기초를 허문다.

 아직도 친일 타령으로 정치 투쟁이 벌어진다.

강대국 수준에 맞는 정신 수준을 갖추느냐가 문제이다.

오만하면 지금이 한국의 황금기이고 앞으론 쇠퇴할 위험도 있다.

亢龍有悔를 경계해야 한다.  
  
10. 미래 세대의 영혼을 누가 잡느냐를 놓고 벌이는, 교과서를 매개로 한

역사전쟁에 현대사를 만들고 기록해간 건설의 주인공 세대가

참전하여야 대한민국 세력이 이길 것이다.

좌편향 교과서는, 한국 현대사를 이른바 민중

(일하는 사람=노동자, 농민, 빈민, 학생, 투쟁가) 중심으로

 기술, 운동권 보고서처럼 만들었다.

이것이 얼마나 편향되고 부정적인 시각인지는 이 교과서에서

무시된 군인, 기업인, 상사맨, 과학기술자, 그리고 해양인들이

 이번 手記에 기록한 진짜 대한민국의

풍성하고 야성적이고 역동적 모습이 증명한다.


11. 자유민주주의와 시장경제, 생존투쟁을 매개로 한 민족에너지의 대폭발,

 개방적 수출입국 전략에 의한 세계의 활동 무대화, 미국의 지원,

 자녀 교육을 위한 부모 세대의 희생 등등 이런 것들이 상호 연결되어

善순환 구조를 이뤘던 지난 70년의 성공 비결이

앞으로로 통용될 것이라고 생각하면 誤算이다.  

'핵무장한 김정은 對 전체 韓民族'의 대결을 자유의 승리로 마무리할 수 있느냐가 관건이다.

장기적으로는, 또 궁극적으로는 국민교양의 質과 量이 우리의 삶의 모습을 규정할 것이다.  


  

자료: 1961년 朴正熙 소장이 군사혁명으로 정권을 잡고

경제개발에 착수하였을 때 한국의 1인당 국민소득은 93달러였다.

당시 경제통계 대상이었던 103개국 중 87위로 최하위권이었다.

1위는 2926달러의 미국, 이스라엘은 1587달러로 6위였다.

일본은 26위(559달러), 스페인은 29위(456달러), 싱가포르는 31위(453달러)였다.

아프리카 가봉은 40위(326달러), 수리남은 42위(303달러), 말레이시아는

한국의 1인당 국민소득보다 세 배가 많아 44위(281달러)였다.

지금 독재와 가난에 시달리는 짐바브웨도 당시엔 1인당 국민소득이 274달러로

한국의 약 3배나 잘 살았고 46위였다. 필리핀도 과거 한국인에겐 선망의 대상이었다.

한국보다 약 3배나 많은 268달러로서 49위였다.

南美의 과테말라도 250달러로 53위, 잠비아(60위, 191달러), 콩고(61위, 187달러),

파라과이(68위, 166달러)도 한국보다 훨씬 잘 살았다.
낫세르의 이집트도 152달러로서 70위였다.

박정희 소장 그룹의 일부는 이집트의 낫세르를 따라 배우려 했다.

아프가니스탄도 124달러로 75위, 카메룬은 116달러로 77위였다.

캄보디아도 116달러로 78위, 태국은 110달러로 80위였다.

차드 82위, 수단 83위, 한국 87위! 한국은 유신시대로 불리는

1972~1979년에 중화학공업 건설을 본격화하면서

1인당 국민소득 랭킹에서 도약한다.

1972년에 한국은 323달러로 75위, 말레이시아는 459달러로 64위였다.

1979년에 가면 한국은 1734달러로 59위로 오른다.

말레이시아는 63위로 1537달러였다.

말레이시아가 못해서가 아니고 한국이 잘하여 뒤로 밀린 것이다.

2012년 한국의 1인당 국민소득은 명목상 2만 2589달러로 세계 34위,

 구매력 기준으론 3만 2800달러로 세계 30위이다.

삶의 질 순위로는 180여 개국 중 12등!

1961년에 한국보다 세 배나 잘 살았던 필리핀은 2611달러로 세계 124위,

이집트는 3112달러로 119위이다. 짐바브웨는 756달러로 158위.

필리핀의 1인당 국민소득은 지난 51년간 약 10배, 한국은 약 250배가 늘었다.

한국인은 필리핀인보다 25배나 빨리 달렸다.

한국은 美, 中, 日, 獨에 다음에 가는 5大 공업국, 7大 수출국, 8大 무역국,

12위의 경제大國(구매력 기준 GDP)이고, 12위의 삶의 질을 자랑한다.

재래식 군사력은 8위 정도. 울산은 세계 제1의 공업도시이다.

 維新期(유신기)의 중화학공업 건설 덕분이다.

1960년대에 한국은 후진국을 벗어났고,

1970년대 말에 선진국으로 가는 막차를 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