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기영의 세상이야기]275. 민족을 유린하고도 모자라 역사까지 멋대로 바꿔? |
조선 말기 제국주의 일본은 조선을 점령하기 위하여 1894년 청일전쟁을 일으켜 청나라 세력을 꺾고, 10년 후인 1904년에는 다시 러일전쟁을 일으켜 러시아마저 격파하기에 이른다. 이후 미국, 영국 등의 강대국들과 침략 상호 묵인체제를 구축하였으며, 이듬해인 1905년 일제는 급기야 조선의 외교권을 박탈하기 위하여 ‘을사조약’을 강제로 체결하였다. 장지연은 《황성신문》에 ‘시일야방성대곡(是日也放聲大哭)’ 이란 제목의 사설로 민족 침략의 원흉인 이토 히로부미(伊藤博文)를 맹비난하고, 을사오적(乙巳五賊)은 우리나라를 왜놈에게 팔아 만백성을 노예로 만들려는 매국노임을 규정하였다. 선생은 아울러 고종황제가 을사조약을 승인하지 않았으므로 이 조약은 의당히 무효임을 만백성에게 알렸다. 이에 국민들은 크게 통분하였고, 전국 도처에서 항일의병운동이 일어났다. 시작함으로써 519년을 이어온 조선은 그 국권을 완전히 상실하게 된다. 그들을 대 일본제국의 식민으로 만드는 유일한 방법은 그들의 가장 큰 자긍심인 역사를 각색하여 피해의식을 심는 것이다. 조선인을 뿌리가 없는 민족으로 교육하여 그들의 민족을 부끄럽게 하라. 문화 역시 일본의 아류(亞流)임을 강조하여 교육해야 한다. 창씨개명을 통해 먼저 조상 단군을 부정하게 하라. 그것이 식민 국민을 식민 국민답게 만드는 가장 좋은 방법이다. 그렇게 될 때 자신의 정체성을 잃고 스스로 대 일본 제국의 시민으로 거듭나고 싶어 할 것이다.” 내린 지침이다. 그럼에도 오늘날 창씨개명은 조선의 자의에 의한 역사적 일이었다고 우기는 저들을 보며 많은 생각을 하게 된다. 관련 고사서 51종 20여만 권을 불태웠다. 일본판 갱유분서(坑儒焚書)였다. 또한 일제가 조선침략과 지배에 정당성을 부여하고, 타율적이고 정체된 사대주의적인 역사로 규정하기 위한 활동의 일환으로 1925년에는 일명 ‘조선사편수회(朝鮮史編修會)’를 설립하여 35권 2만4천여 쪽에 달하는 이른바 《조선사(朝鮮史)》를 날조·발행하였다. 내용이자 일제의 주장대로 단군은 인간이 아닌 곰의 자손이라는 것이다. 역사는 근멸(根滅)되어 조선의 역사가 왜놈들의 역사보다 짧아지게 되었고, 일제치하의 조선인들은 ‘조선사편수회’에 의해 철저히 만들어진 역사만을 교육받을 수 있었다. 놓는 극악무도한 만행을 자행하기도 했다. 이는 단순히 호랑이의 형세를 토끼로 비유한 것이 아니라 우리민족의 정체성과 강한 자부심을 억누르기 위한 일종의 약아빠진 계략이었던 것이다. 악장가사는 거의 절반이나 변질되어 조선 왕조를 격하 또는 비하시키는 내용을 담게 되어 본래의 악무(樂舞)가 갖고 있던 사상성이나 의미가 크게 훼손되었다. 또한 종묘의 문화재적 우수성과 조선조 전통문화의 위상에 결정적 오점이 되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현재 무형문화재로 지정되어 연주되고 있는 것이 모두 일제의 민족말살정책의 잔재(殘滓)인 것이다. 하루속히 확정(廓正)하여 문화재적 우수성과 위실(違失)된 우리 전통문화의 위상을 재정립해야만 한다. 우리 민족이 열등의식과 무력감에 사로잡히는 심리적 근거가 되기도 하였으나 광복이후 주체적인 역사연구와 교육이 이루어지면서 대부분 극복되었다. 민족사의 기원을 밝힌 국사학의 한 이념인데, 이는 지배체제에 대한 저항의 역사관으로서의 성격과 함께 국수주의 재야사학과 연결되는 경향이 있다. 단재 신채호를 통해 정립되었으며 정인보, 장도빈, 안재홍, 문일평 등에 의해 계승되어 일제의 식민사관에 맞섰다. 유언을 하셨다고 한다. 마지막 조선총독 아베 노부유키는 항복문서에 서명을 했고, 9월12일 제10대 조선총독의 자리에서 물러나 일본으로 돌아갔다. 그가 조선총독부의 마지막 업무를 마치는 자리에서 조선인들에게 이런 망언을 남겼다고 한다. 정신을 차리고 찬란하고 위대했던 옛 조선의 영광을 되찾으려면 족히 100년 이라는 세월이 훨씬 더 걸릴 것이다. 우리 일본은 조선인에게 총과 대포보다 무서운 식민사관(植民史觀)을 심어 놓았다. 너희들은 결국 서로 이간질하며 노예적인 삶을 살 것이다. 보라! 실로 조선은 위대하고 찬란했지만 머지않아 결국 식민교육의 노예로 전락할 것이다. 그리고 나 ‘아베 노부유키’는 다시 돌아온다.” 다시 들게 되는 것은 우리 민족에게 죽고 싶을 만치의 뼈저린 고통을 안겨준 과거의 역사적 사실들을 인정하지 않는 것도 모자라 이제 아주 대 놓고 역사를 왜곡하고, 초중 교과서를 날조하는 것도 모자라 최근에는 위안부 문제로 대한민국을 흔들기 시작한다. 국민들을 노엽게 하는 일본인들의 민족의 정체성과 인간 본연의 양심은 있는지 그 혈통 자체가 심히 의심스러울 따름이다. 일본의 역사 왜곡은 범국제적인 당위성을 위하여 국제사회로부터의 지지기반을 단단히 하고 있음이 여실히 드러나 있다. 조속한 결과 이후 다시 시작하는 정권에서는 부디 다각적이고 현명한 대처를 촉구하는 바이다. 그것만이 대한의 숭고한 역사가 송두리째 왜곡되는 민족적 억울함을 당하지 않을 것이다. 역사를 잃어버린 민족은 민족의 정체성이 없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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