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누이 시인: 이호우-이영도
위의 두분의 시조 시인은 본인(김종길)이 태어나고 자란 동네와 1. 5Km 정도 거리에 있으며 어릴 때 두분의 시인이 자란 곳은 5일장터 였다. 비록 경남. 북이 다르지만 아주 가까운 곳이나 다닌 초등학교도 다르고, 두 분은 우리 부모님과 동년배이시니 더욱 존경과 친근감이 있습니다. 망팔에 문학에 관심두고 몰라 뵈었으니 문학의 입문 자격도 없다고 하겠다. 그러나 지금이라도 두분을 알게 되었음이 영광이요 자랑입니다. 다음에 고향 갈 때는 훌룽하신 두분의 족적을 꼭 둘러 보겠습니다. |
한국시조문학진흥회에서 기록한 오누이 시인 이호우-이영도편을 아래와 같이 소개한다.
◆ 작고문인 회고/ 李鎬雨 편
차례
● 작품(개화, 청우, 달밤, 살구꽆 핀 마을, 낙화, 춘소, 균열)
● 이병기 추천사
● 이호우 연표
● 이호우 작품세계/리태극, 대방가/서벌, 이호우연구/김창완, 30주년 이호우/행사
1940년 문장을 통하여 등단하였으며, 해방 후 죽순 동인으로 창작시조 운동을 전개하였다. 그의 시조는 인간의 삶이 자연을 받아들이고 향수하는 수동적인 상상력을 통해 구현되는 종래의 시조와는 달리 한 시대와 한 민족이 해결해야 할 과제의 핵심으로 그의 정신세계를 몰고갔다는 평을 받고 있다. '기빨', '춘한', '촉석루' 등과 같은 작품에서 잘 드러나듯이 역사적 사실에 대힌 찬미나 영탄에서 벗어나 시인의 현실과 대상현실을 일치시킴으로써 미래지향적인 태도를 보여주는 것이다.
김창완 정형시에의 향수와 일탈
개화(開花)
꽃이 피메 한 잎 한 잎
한 하늘이 열리고 있네
마침내 남은 한 잎이
마지막 떨고 있는 고비
바람도 햇볕도 숨을 죽이네
나도 가만 눈을 감제
「현대문학」1962
휴화산(休火山)
일찍이 천길 불길을
터뜨려도 보았도다
끓는 가슴을 달래어
자듯이 이 날을 견딤은
언젠가 있을 그날을 믿어
함부로치 못함일세
「시조문학」6집 1962.11
청우(聽雨)
-1961년 가을. 미소 원폭실험 경쟁에 즈음하여
무상을 타이르는
가을 밤 빗소린데
서로 죽임을 앞서려
뿌리는 방사능진
두어도 백년을 채 못할
네나 내가 아니가
「시조문학」1964
달밤
낙동강 빈 나루에 달빛이 푸릅니다
무엔지 그리운 밤 지향없이 가고파서
흐르는 금빛 노을에 배를 맡겨 봅니다
낯익은 풍경이되 달 아래 고쳐 보니
돌아올 기약 없는 먼길이나 떠나온 듯
뒤지는 들과 산들이 돌아 돌아 뵙니다
아득히 그림 속에 정화(淨化)된 초가집들
할머니 조웅전(趙雄傳)에 잠들던 그 날밤도
할버진 율 지으시고 달이 밝았더니다
미움도 더러움도 아름다운 사랑으로
온 세상 쉬는 숨결 한 갈래로 맑습니다
차라리 외로울망정 이 밤 더디 새소서
살구꽃 핀 마을
살구꽃 핀 마을은 어디나 고향 같다
만나는 사람마다 등이라도 치고지고
뉘집을 들어서면은 반겨 아니 맞으리
바람 없는 밤을 꽃그늘에 달이 오면
술 익는 초당마다 정이 더욱 익으리니
나그네 저무는 날에도 마음 아니 바빠라
낙화(落花)
두메에 비가 오니 개울에도 낙화로고
이왕 질 바엔 차라리 옳앳도다
곱다리 유수(流水)에 부쳐 종적없이 하여라
「죽순」11집 1949
춘소(春宵)
오붓이 봄 한밤을
무르익은 너의 젖가슴은
너무도 달디단 꽃술
나는 취한 한 마리 호접
이대로 꽃잎 오무라
하냥 옥고만지라
- 여백록
균열(龜裂)*
차라리 절망을 배워
바위 앞에 섰습니다
무수한 줄름살 위에
비가 오고 바람이 붑니다
바위도 세월이 아픈가
또 하나 금이 갑니다
*이호우 시조집에는 "바위 앞에서"로 수록
◆이호우 연표 ----------------------------------
1912.3.2 경북 청도 대성면 내호동(현재 청도읍 내호리) 259번지 부 본관 경주 이 종수와 모 구 봉래 사이 2남 2녀 중 차남으로 출생 필명 이호우(爾豪雨)
1924 밀양보통학교 졸업
1926 일본 동경 예술대학에 유학
1930 신경쇠약 증세 재발과 위장염으로 학업 포기. 귀국
1934 경북 칠곡의 본관 김해 김 진희의 영애 김 순남과 결혼
1936 시조"연춘송"으로 동아일보 신춘문예 당선작 없는 가작 입선
이후 40년 추천전까지 동아일보 독자투고에 <낙엽>,<진달래>,<새벽> 등을 투고, 선을 맡은 이 병기 선생이 엽서를 보내 문장지 추천제
를 안내함
1940 시조 <달밤>이 문장지 추천됨
1946 고향 가산정리 대구 대봉동으로 이사. 이후 한 때 대구고등법원 재무장, 적산인 문화극장 사무국장
1949 남로당 도간부로 모략 받아 군법회의에서 사형 언도 받음
1950 봄, 무죄 방면(당시 대통령비서실장인 시인 김 광섭의 진언으로 석방)
1954 윤 계현과 함께 「고금 명시조정해」(문성당) 출간
1955 시조 <바람벌> 대구대학보(현 영남대)에 발표, 이 작품이 반공법에 저촉.
첫시조집 「이호우시조집」(영웅출판사) 출간
1956 "경북문화상"(문학부문) 수상
1956 대구매일신문 편집국장
1958 KAL기 납북사건 때 매일신문 사설로 필화
1960 청마 유치환과 전국예술단체 총연맹(예맹) 결성
1967 영남시조문학회장(초대)
1968 시조집 「휴화산」(중앙출판사) 발행
1970.1.6 대구 동문다방을 나와 귀가 중 심장마비로 졸도 경북대부속병원으로 옮기는 도중 타계
1970.1.10 10시 협성상고 교정에서 문인장 거행
1972.1.6 대구 앞선 공원 이 호우 시비 제막
1991 이호우 문학상 기금 마련 전시회
1992.1.6 이호우 시조 전집 「차라리 절망을 배워」간행
1992.1 제1회 이호우시조문학상 시상
가람 이병기 추천사/ 달밤/ 이호우
秋江 밝은 달에 一葉片舟 혼자 저어
낙대를 떨쳐 드니 잠든 白鷗 다 놀란다.
어데서 一聲 漁笛은 조차 흥을 돕나니
小船에 그물 실을 제 酒樽 행여 잊을세라
東嶺에 달 돋앗다 어서 배를 띄어스라
아희야 盞자로 부어라 李白 본 듯 하여라
蘇仙七月 이달이오 赤壁江月 이 달이라
이 달은 그 달이나 그 사람 어대 간고
두어라 이 달 두고 감은 날 위한가 하노라
이상은 옛날 사람의 달밤을 읊은 것이다. 으레히 江이면 白鷗 漁笛 興 酒樽 盞 李白 蘇仙 등을 썼다. 정말 그밤 그 강에 백구 어적 주준이 있었는지도 모르겠다. 자기의 독특한 느낌과 용어를 쓰지못하고 그저 한시에서 항용 쓰든 것을 되풀이 하였다. 그런 수작을 지금에도 하는이가 없지 않다.
그러나 이호우씨의 '달밤'은 이호우로서의 느낌과 용어를 썼다. 새롭고 깨끗하고 술술하다. 아무 억지도 없고 꾸밈도 없고 구김도 없다. 시를 짓는이가 무슨 어뚱한 굉장한 소리를 하려고 애를 쓰기도 한다. 그럴 때에는 도리어 잡치고 만다. 시는 그런 야심보다도 그 靈感을 얻어야 한다. 그 靈感을 얻지 못하면 도저히 될 수 없다.
고려 김황원이가 부벽루에 올라 '長城一面溶溶水 大野東頭點點山' 이라는 한 聯句만 짓고 그 全首를 못얽어 苦吟하다가 통곡을 한것도 그 靈感을 잃었든 것이었다.
과연 이 '달밤'은 범상한 제재를 가지고 이와 같은 詩를 지은 건 그의 천품과 조예가 어떠함을 능히 짐작하겠으며 우리 詩壇의 한 자리를 그에게 許與 않을 수 없 다.
'문장' 제2권 6.7월호 합
◆이호우의 작품 세계-----------------------
이호우는 초기작인 <달밤>에서는 가람과 노산의 작풍을 본받아 낭만과 悠適을 나타냈으나.
<바위>에 와서는 그의 작품관이 세워진 생활상을 진지하게 구상화하였고, <개화>에 이르러서 새로운 작품 세계를 열어 현대시조의 면모를 확립시켰다. 가람과 노산의 뒤를 이은 대표적인 작가라고 하겠다
<리태극, 「한국현대시조개관」중에서
◆대방가, 즉, 대가란 필요에 따라 아무에게나 가 붙는 호칭이 아니다.
한 시대인으로 부끄럽지 않은 삶을 살아야 하고, 해당 전문 분야는 물론이려니와 사회 전체가 고루 수긍할 수 있을 만큼 전문성의 면모가 뛰어나야 한다. 그래야만 남들이 그를 따르면서 존경하고, 언제까지나 우뚝한 존대로 마음에 새기게 된다. 다시 말해서 뒷사람들에게까지 변함없이 공감할 바를 주고, 적잖게 끼쳐 줄 바를 확보해둔 사람만이 대가로 대접받게 되는 것이다.
첫째, 이호우는 1930년대 중·후반 무렵부터 보여 온 시조 습작과 추천 과정을 거쳐 타계한 1970년 벽두까지 줄곧 시조 작품을 출중하게 노래해 왔었다. 그처럼 30년이 넘도록 그때마다 남다른 이목을 집중시켜 왔다는 점에서 시조 분야의 마천루(摩天樓)다.
둘째, 이호우는 현대시조를 열어 준 선두 주역 중의 하나였다. 갑오경장 이후부터 진전된 것이 신시조이고, 그것을 제대로 탈바꿈시킨 것이 혁신시조이며, 다시 그것을 오늘의 문학이 되도록 탈바꿈시킨 것이 현대시조다. 이호우가 취한 현대적 시조 역할은 8·15 국어 광복으로부터 비롯되어 가장 한국적인 목소리로 오늘의 세계 문학 사조와 기법에다 잇닿게 한 첨단의 가락이었으며, 중후한 지성인의 시적이면서 국제감각을 도외시하지 않은 새로운 세대
적 사회적 시조 지향의 길이었다.
셋째, 이호우의 일생은 안으로 드높이 세운 기품을 격조로 잘 조절한 삶이었다. 그것은 그가 함부롭지 않게 살면서도 멋지게 살다 갔음을 뜻한다. 이는 그의 시조 품격과 일치도어 있는 삶이다.
넷째, 이호우는 고매하면서도 과감한 인물이었다. 투철한 역사적 안목으로 현실태에다 발딛은 정의와 자유인으로서의 그였고, 그러한 그의 정신적 파급성과 행동 역능은 오늘 이 시각에 더 파장되고 있다. 더러운 시속의 결이 일면 초연히 대처하고, 부당함이 극에 달하면 결연히 저항한 그였다. 그 때문에 6·25 와중에서 그를 아낀 문단 일각에서 적극적인 구명운동을 벌여 목숨만 건졌으나 끝까지 불의와 타협하지 않은 그였다. 이를 종합해보면, 정몽주 혹은 사육신의 기개를 받아 내린 그였고, 남궁억, 신채호 장지연 한용운 같은 근대적 지사형의 문인 면모와 맥이 통하는 그였다. 그가 대구매일신문 등에서 보여준 강직하면서도 날카로운 칼럼을 통해 봐도 여실히 증명되는 일이다.
다섯째, 이호우의 문학관을 움직인 철학과 사상 성향은 <한> 혹은 <하나>로 집약되어 있거나 표출되어 있다. 그것은 무엇보다도 분단 없이 온전해야 한다는 조국 민족 관점에서 나온 것이었으며, 백 범 김구의 투지 의연한 신념과 행동과 다르잖은 관점이기도 하다. 그러한 사상적 성향이나 신념에 찬 어휘 능력은 그의 시조 도처에 철근처럼 세워져 있고 받쳐져 있다. 그런 그는 현대적 지사형의 문인, 그 한 기둥이자 대들보이다.
<서벌, 「현대시조의 마천루, 이호우」홈토피아 1989 1월호
◆이호우의 시조는 (중략) 한국 현대시조의 고민을 그대로 안고 있는, 한국 현대시조의 전형성을 보여 준다. 율격을 지키고자 하는 전통에의 염원과 그것으로부터 일탈하고자 하는 변혁에의 의지가 그의 시조에는 교차하고 있으며, 소재와 내용에서도 전통적인 것과 자유시적인 것이 섞여있다. (중략) 이호우의 변형 의지는 형식적인 면에서보다는 내용의 면에서 평가받아야 할 것이다. 그의 시조의 많은 부분이 전시대적인 것을 다루고 있다고 하더라도 그리고 그의 언어가 많이 고전적인 '투'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고 하더라도 현대시의 이미지와 상징 수법을 시조 속에 차용하고 있는 점과 비시조적 소재를 끌어들이려 노력한 점은 잊정해야 될 것 같다.
<김창완,「정형에의 향수와 일탈」,한국현대시문학대계22「김상옥, 이호우」 - "시조문학' 2000년 겨울호
◆제30주기 이호우 시조문학회 밤 행사 거행
시조문학의 현대적 계승에 큰 업적을 남기신 이호우 시인의 문학정신을 기리는 2000년 추모 세미나와 시상식이 11월 25일 4시 수성구 두산동 200-1 아리아나 호텔 7층 백합홀에서 이호우 문학기념회(회장 심재완) 주최로 거행되었다. 제1부 세미나에서는 이호우 시조론연구/문무학, 이호우 선생의 인간적 면모/류상덕, 현대시조의 위상과 전망/ 유재영 등의 주제 발표가 있었고, 제2부 행사로 거행된 시상식에서는 이우걸 시인이 작품 '수저'외 1편으로 영예의 이호우 시조문학상(제10회)을 수상하였다.
- "시조문학' 2000년 겨울호
◆작고 문인 회고/ 이영도 편
차례
1.이영도 연보/
2.작품(언약, 바위, 달무리, 외따로 열고, 난, 모란, 천계, 고비, 설야, 은총, 노을, 광화문네거리에서, 석류, 단풍, 아지랑이, 단란, 생장, 비, 탑, 그리움, 무지개, 백록담, 해녀, 이별,/
3.사향노루 자나간 뒤에는(노산 이은상)
1.정운(정운) 이영도 여류 시조시인 연보----------------
1916.10.22 경북 청도군 청도면 내호동 259번지에서 일제 지방군수를 지낸 아버지 이종수와 어머니 구봉래의 1남 2녀 중 막내 딸로, 출생 시조시인 이호우의 친 동생. 정규 교육 없이 자가에서 가정교사를 두고 신구 학문 섭렵
1936 대구의 대부호 집안의 막내 아들 박기주와 결혼
1939 외동딸 박진아 출생
1945 부군과 사별, 대구의 이윤수가 주재한 죽순(竹筍) 동인으로 활약하면서 "제야"로 등단. 경남
통영여중 교사 취임
1953 부산 남성여중고 교사
1954 시조집 "청저집(靑苧集)" 상재
1955 마산 성지여고 교사 취임
1956 부산여대 강사
1958 수필집 :춘근집(椿芹集)" 출간
1964 부산 아동회관 관장 취임
1966 수필집 "비둘기 내리는 뜨락" 상재 제8회 늘원 문화상 수상
1968 시조집 "석류"를 오빠 이호우와 함께 오누이 시조지 출간. 중대
출강
1971 시필집 "머나먼 사념의 길목" 상재
1975 한국시조작가협회 부회장, 한국여류문학인회 부회장
1976.3.6 자택에서 뇌일혈로 별세
유고집 "언약" , 유고수필집 "내 그리움은 오직 푸르고 깊은 것"
2.작품
*言約
해거름 등성이에 서면
愛慕는 낙락히 나부끼고
透明을 切한 水天을
한 점 밝혀 뜬 言約
그 자락
감감한 山河여
귀뚜리 叡智를 간(磨)다.
*바위
- 어머님께 드리는 詩
여기 내 놓인대로 앉아
눈 감고 귀 막아도
목숨의 아픈 證言
꽃가루로 쌓이는 四月
萬里 밖
回歸의 길섶
저 歸燭道 피 뱉는 소리
*달무리
우러르면 내 어머님
눈물고이신 눈매
얼굴을 묻고
아. 宇宙이던 가슴
그 자락
鶴같이 여기고, 이 밤
너울 너울 아지랑이
외 따로 열고
비 오고 바람 불어도
가슴은 푸른 하늘
홀로 고운 星座
지우고 일으키며
솔바람
머언 가락에
목이 긴 鶴 한 마리
멀수록 다가 드는
思慕의 空間 밖을
萬里 더 지척같이
넘나드는 꿈의 通路
그 세월
외따로 열고
다둑이는 추운 마음
*蘭
나직이 영창 밖으로
스며드는 물빛 黎明
그 숨결 이마에 감고
새댁처럼 素心 눈 뜨네
내 마음
사래 긴 渴症 위를
왁짜히 장다리꽃 튼다
*모란
여미어 도사릴수록
그리움은 아득하고
가슴 열면 고여 닿는
겹겹이 먼 하늘
바람만
봄이 겨웁네
옷자락을 흩는다.
*天啓
-사월탑 앞에서
신 벗고, 塔 앞에 서면
한 걸음 다가서는 祖國
그 絶叫 사무친 골엔
솔바람도 설레어 운다
푸르게
눈매를 태우며, 너희
지켜 선 하얀 天啓
*고비
꽃 피고 싹 트이면
골을 우는 뻐꾸기들
목숨의 크낙한 分娩
함께 앓는 이 고비를
山河도
끓이던 靑血
아, 그 三月, 그 四月에......
*雪夜
눈이 오시네, 사락사락
먼 어머님 옷자락 소리
내 新房 장지 밖을
감도시던 기척인 듯
이 한밤
시린 이마 짚으시며
약손인 듯 오시네.
곰곰이 헤는 星霜
멀고 험한 오솔길을
갈(耕)아도 갈아도 목숨은
연자방아 도는 바퀴
갈퀴손
어루만지며
言約인 듯 오시네.
* 恩寵
잎잎이 가을을 흔들고
들국화 낭랑한 언덕
그 푸름 속 아른 아른
고추감자리 난다
당신 뜰
마지막 饗宴 위로
구름이 가네, 바람이 가네.
그 노을
먼 尖塔이 타네
내 가슴 절벽에도
돌아 앉은 人情 위에
뜨겁던 임의 그 피
悔恨은
어진 깨달음인가
"골고다"로 젖는 노을.
*光化門 네거리에서
사월의 이 거리에 서면
내 귀는 소용도는 海溢
그날, 東海를 딩굴며
허옇게 부셔지던 泡哮
그 소리
네 목청에 겹쳐
이 廣場을 넘친다
정작 바길 덤덤해도
한 가슴 앓는 傷痕
차마 바래일(漂白) 수 없는
녹물 같은 얼룩마다
千이요
萬의 푸른 눈매가
나를 불러 세운다.
*石榴
다스려도 다스려도
못 여밀 가슴 속을
알알 익은 고독
기어이 터지는 秋晴
한 자락
가던 구름도
추녀 끝에 머문다.
*丹楓
너도 타라 여기
황홀한 불길 속에
사랑도 미움도
넘어 선 淸이어라
못내편
그 충춘들이
사뤄 오르는 저 香爐
아지랑이
어루만지듯
당신 숨결
이마에 다사하면
내 사랑은 아지랑이
춘삼월 아지랑이
장다리
조오란 텃밭에
나비
나비
나비
나비
*團欒
아이는 글을 읽고
나는 繡를 놓고
심지 돋우고
이마를 맞대이면
어둠도
고운 愛淸에
삼가한 듯 들렀다.
*生長
-진아에게
날로 달 붓듯이
자라나는 너를 보면
무엔지 서러움이
기쁨보다 느껴웁고
차라리
바라던 마음
도로 허전 하구나.
*비
그대 그리움이
고요히 젖는 이 밤
한결 외로움도
보배냥 오붓하고
실실이
푸는 그 사연
장지 밖에 듣는다.
*塔3
너는 저만치 가고
나는 여기 섰는데.....
손 한번 흔들지 못한 채
돌아선 하늘과 땅
愛慕는
舍利로 맺쳐
푸른 도로 굳어라.
*그리움
생각을 멀리하면
잊을 수도 있다는데
고된 살음에
잊었는가 하다가도
가다가
월컥 한 가슴
밀고 드는 그리움.
*무지개
여윈 그 세월이
덧없는 살음이매
남은 日月은
비단 繡로 새기고저
오매로
어리는 꿈에
눈 부시는 무지개.
*白鹿潭
차라리 스스로 달래어
쓰느라니 고였는가
그날 하늘을 흔들고
아우성 치던 불길
투명한
가슴을 열고
여기 내다뵈는 상채기.
*海女
눈은 서늘한 눈은
珊瑚빛 어린 하늘
먼 갈매기 울음에
부풀은 淸일레라
여울져
달무리 가듯
일렁이는 뒤움박.
*이별
정작 너를 두고
떨쳐 가는 이 길인데
嶺湖 千里를
구비마다 겨운 봄빛
山川이 뒤져 갈수록
닥아 드는 體溫이여!
3. 이영도의 작품세계/ 사향 노루 지나간 뒤에는 <이은상>------
동양에 있어서 여류 시인의 작품들을 살펴본다면, 중국 고대로 올라가 서왕모(西王母)의 "천자요(天子謠)"까지는 굳이 들추지 않더라도, 노나라 도명(陶明)의 딸 도영(陶영)이 지은 황곡가(黃鵠歌)나 송강왕(宋康王) 때 한빙(韓憑)의 아내 하씨(河氏)가 지은 오작가(烏鵲歌)로부터는 헤아릴 수 있을 것이다.
이미 수천년의 역사를 지녔고, 또 우리 국사상에 있어서도, 고구려 뱃사공 곽리자고(藿里子高)의 아내 여옥(麗玉)의 공후인과 신라 여인 설요(薛요)의 반속요(返俗謠)와 백제 행상의 아내가 부른 정읍사(井邑詞)로부터 손꼽을 수 있을 것이라.
이도 역시 천 수백 년의 역사를 지녔고, 그 이후 고려, 이씨 왕조를 통하여서도 자못 수 백명의 여류 시인과 그들의 아름다운 작품을 헤아릴 수 있을 것이다.
그 중에서도 시조 작품을 남긴 여성들만도 역대를 통하여 현부인, 궁녀, 기생들을 아울러 현재 문헌상에 나타난 이름이 자못 30명에 이르고 있음을 본다.
그리고 우리 시대에 와서도, 일찍부터 여류 시조 작가가 나타나지 않은 것이 아니었지만, 그 중에서도 여름밤 구름을 뚫고 나타나는 달처럼, 모두를 쳐다보도록 맑고 환한 모습을 드러내보인 두드러진 여류 시조 작가가 누구였더냐 물으면, 아마 누구도 이 영도를 지적할 것임에 틀림이 없을 것이다. 그것은 그가 확실히 시인이 도달해야 할 어떤 경지에 이르렀던 여인이기 때문이다.
시인이 자연을 묘사하기는 쉽다. 그러나 그것 가지고서는 시인이 어느 깊은 경지에 들어갔다고는 보기 어렵다.
시는 어떤 묘사로써 일삼기보다는 자연과 대화를 나눌 수가 있어야 한다. 물론 이것은 음악이나 미술 등 모든 예술에 다 통하는 말이기도 한 것이다.
우리는 이영도의 시조 작품 속에서 그가 자연과 나누던 대화를 들을 수 있을 것이다. 또 어느것에서는 그가 자기 스스로 맑고 미묘한 정서 속에 휘말려 들어가서 숨가쁘게 심호흡을 하는 소리를 듣기도 하는 것이다.
그는 무엇인가 갈구하고 있었다. 신의 문을 두들기며 대답을 들으려 했다. 그러나 마침내 세상 인연을 끊어버리고 신의 품속으로 돌아가고 말았다.
이것이 그의 일생이었다.
다만 사향노루가 지나간 위에는 발자국 닿은 풀끝마다 향기가 끼치듯이. 그는 어디론지 가버렸건만, 향내 머금은 작품들이 남아 우리 가슴에 풍기고 있다
길이 갈 것이다. -유고집 "언약" 서문에서
기타 :손한번 흔들지 못한 채 돌아선 하늘과 땅(임종찬),
오직 사랑하는 그의 음성 들리는 듯(박구하), 내가 아는 영도,
그 달빛 같은(박옥금) 등 참고 할 것.
- 2001년 <시조문학> 봄호에서 성일만 정리하다
경상북도 청도의 한 집안에서 나고 자란 이호우(李鎬雨)[1912∼1970], 이영도(李永道)[1916∼1976] 오누이 시인이 시조 문학의 현대화에 끼친 영향은 쉽게 재단할 수 없는 성과로 받아들여진다. 오누이 시인의 시정신과 시적 배경, 사상과 철학이 갖는 의미를 재해석하고 현대 문학의 토양으로 삼는 일은 문화 민족의 올바른 자세라 하겠다.
청도가 낳은 이호우·이영도 오누이 시인을 기리기 위하여 청도군에서는 2009년부터 매년 11월 ‘이호우·이영도 오누이 시조 문학제’를 개최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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