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인 오규원
현대 시작법
작가 오규원 출판 문학과지성사 발매 2006.03.22
출생: 19 41년 12월 29일
사망 : 2007년 2월 2일
출신지 : 경상남도 밀양 삼량진
직업 : 시인
학력 : 동아대학교 법학과
데뷔 : 1965년 '현대문학'을 통해 등단
경력 : 1982년~2002년 서울예대 문예창작과 교수
수상 : 2003년 제35회 대한민국 문화예술상 문학부문
대표작 : 사랑의 기교, 토마토는 붉다 아니 달콤하다, 하늘아래의 생
팬카페 : 시인 오규원을 사랑하는 모임
1968 <현대문학>에 시<몇 개의 현상>이 추천되어 등단.
1982 현대문학상 수상.
주요 저서 시집 목록
저서명 부서명 총서명 출판사 출판년
시집 <분명한 사건(事件)> 한림출판사 1971
시집 <순례(巡禮)> 민음사 1973
시집 <사랑의 기교(技巧)> 민음사 1975
시집 <왕자(王子)가 아닌 한 아이에게> 문학과 지성사 1978
시집 <이 땅에 씌어지는 서정시(抒情詩)> 문학과 지성사 1981
시집 <희망 만들며 살기> 지식산업사 1985
시집 <가끔은 주목받는 생(生)이고 싶다> 문학과 지성사 1987
수필집 <아름다운 것은 지상에 잠시만 머문다> 문학사상사 1987
시집 <하늘 아래의 생(生)> 문학과 비평사 1989
<출처 네이버 인물검색>
「시 창작 수업」을 받을 기본적 소양이 부족하다는 갈증에 한 방울의 물처럼 다가 온 책, 『현대시작법』
‘詩를 알고 싶으면, 故 오규원 시인의 『현대시작법』을 읽어보라’는 타자의 독백을 흘려듣지 못하는 ‘나’는 누구인가.
이 지점이 열정의 원천이며, 끝내는 ‘나’를 볼 것이다.
그 한 줄이 한 밤 내내 머릿속을 점령하고, 이튿날 부리나케 빗길을 뚫고 세 번째 도서관으로 달려가게 했다.
460쪽 분량, 빛이 바랜 누런 재질의 1990년 産 책, 내겐 LED급 조명으로 다가왔다.
책은 10개의 목차로 구성되어 있다.
개정판 책머리에
초보자를 위해 덧붙이는 글
책머리에
1장 시적 표현의 이해
1. 시적 표현과 고정관념 / 2. 상투적 표현과 관습적 인식 / 3. 외화성 언어와 피상적 인식 / 4. 감정의 노출과 감정의 억제 / 5. 논리적 언어와 통상적 언어 / 6. 추상어와 보편어 / 7. 철학적 내용과 철학적 언어 / 8. 형식과 리듬
2장 대상과 인식 과정
. 시적 대상과 심리적 거리 / 2. 국면과 관점 / 3. 관점과 미적 지각의 유형 / 4. 통합적 관점
3장 시적 묘사
1. 묘사의 특성 / 2. 설명적 묘사와 암시적 묘사 / 3. 주관적 묘사와 객관적 묘사 / 4. 묘사의 어울림 / 5. 묘사와 언어의 절제 / / 6. 묘사 속의 설명 / 7. 묘사와 장식적 수사
4장 묘사의 구조와 시점
1. 서경적 구조와 시점 / 2. 심상적 구조와 시점 / 3. 서사적 구조와 시점 / 4. 시점의 가치
5장 시적 진술
1. 시적 진술과 설명 / 2. 진술의 특성 / 3. 진술의 종류 / 4. 넋두리와 독백적 진술 / 5. 피상적 주장과 권유적 진술 / 6. 자기 중심적 사고와 해석적 진술 / 7. 진술과 묘사의 어울림
6장 시적 진술의 구조와 시점
1. 독백적 진술, 회고적 시점, 기원적 시점 / 2. 권유적 진술: 관행적 시점, 비관행적 시점 / 3. 해석적 진술, 관조적 시점, 풍자적 시점
7장 시와 화자
1. 시적 화자와 일반적 유형 / 2. 시 속의 '나'와 현실 속의 '나' / 3. 일상 속의 '나'와 구체적 경험 속의 '나' / 4. 가면의 화자와 어조 / 5. 불투명한 가면과 시적 화자 / 6. 숨은 화자와 시 속의 역할 / 7. 숨은 화자와 감각적 인식 / 8. 화자와 지각의 변화
8장 비유와 활용
1. 비유와 시적 언술 / 2. 비유의 종류 / 3. 의미의 비유: 직유, 은유, 상징, 활유, 인유와 인용적 묘사·, 제유와 환유, 풍유와 우화, 성유, 희언법 / 4. 말의 비유: 도치, 과장, 대조와 모순 어법, 반복과 열거, 반어와 역설, 영탄과 돈호법, 역언법, 수사적 의문법, 완곡 어법
9장 시의 구조와 행·연
1. 시의 행과 연 / 2. 시의 형태와 행·연 / 3. 리듬과 행·연: 외국 시와 우리 시의 정형율, 자유시의 리듬 / 4. 이미지와 행·연: 이미지의 개념, 이미지의 강조와 행·연, 이미지의 종류와 행·연, 회화적 구성과 행·연 / 5. 의미와 행·연: 의미와 양태, 의미와 연의 기능, 의미의 전형적 형태의 행·연, 양행 걸침과 행·연, 의미의 강조와 해체, 일상적 표현 형식의 변용
10장 의도적 의미와 실제
1. 작품과 의미: 작품 속의 세 가지 의미, 전체적 불명확성과 의도, 부분적인 불명확성과 의도, 의도와 다른 세계, 해석의 가능성과 표현의 방만성 / 2. 의도와 시작 과정: 의도와 작품과의 거리, 퇴고의 과정과 실제색인
10장, ‘의도적 의미와 실제’에 제시되어 있는 ‘인식과 詩作과정’이라는 도표(p.449)가 그간 모호하게, 무의미하게, 마음 내키는 대로 이루어지던 생각의 단편들을 ‘인식’의 단계로 어엿하게 자리매김해 주었다.
→ 작품의 ‘의도적 의미’ 통로
← 작품의 ‘해석적 의미’ 통로
대상 → 감지 → 언어화 → 작품에 이르는 (A)-(B)-(C)의 통로는 작가의 창작 과정이기도 하고, 독자 → 작품 → 언어화 → 감지에 이르는 (D)-(C)-(B)는 독자의 감상 과정이기도 하다.
이 얼마나 명확한가!
이런 과정들을 체계적으로 거치지 않고 ‘감정’에 의지해 시의 구조를 유린했음을 반성하고 반성할 것이다. 시선의 주관성이 떨어져나갈 때까지 ...
앞으로의 詩作은 반성의 행위요, 수행의 행위가 될 것이다.
詩에 대한 오해 두 가지
습작기에 있는 사람들이 잘못 알고 있는 기본적인 2가지 사항을 옮긴다.
『⓵ 시를 사적인 감정을 발산하는 공간으로 이해하고 있지 않은가?
시는 언어로 형상된 하나의 세계로써 의도적이고 집중된 관찰에 의해 얻어진 공간이자, 미적인식을 담은 예술적 세계이다.
시란 감정의 단순한 표현이 아니라 세계가 숨기고 있는 모든 가치로운 존재와 현상을 감지하는 인식의 표현이다. 그런 까닭으로 시에는 푸념이나 혼잣소리가 끼어들 틈이라고는 조금도 없는 그런 감정의 세계이다.
자기 중심적 사고를 시적차원으로 끌어올리기위해서는 작품을 쓰는 사람 스스로가 '시를 쓰고 있다'라는 바른 의식을 갖고 있어야 한다. '시를 쓰고 있다'는 의식은 공허한 상념의 줄다리기를 해서는 안된다는 깊은 반성 위에 위치하기 때문이다.
⓶ '시적 화자'와 '현실의 나'를 혼동하고 있지 않은가?
작품 속의 사실적 존재나 현상은, 그것들이 이미 허구인 예술 작품 속으로 공간 이동을 한 만큼, 사실 그 자체가 아니라 작가가 말하고자 하는 것을 구체화하는 형상적 존재로 존재 전이를 한다. 작가는 이런 형상, 이런 형상화를 통해 말한다.
시속의 '나'는 주관적 감정을 드러내는 일상적 자아가 아니라, 세계와의 관계 속에서 인간의 정서를 드러내는 유형적·개별적 존재로서의 '나'이다. 작품 속에서 세계 속의 인간이 감지할 수 있는 각종의 의식화된 정서를 개별적 형태로 혹은 유형화된 형태로 보여준다는 점에서 그 정서는 형식화된 것이며, 형식화되어 있다는 점에서 비형식화의 양상을 보여주는 무질서한 현실 속의 '나'의 그것과 구별된다
이 점에 관한 명확한 인식의 결여로, 습작기의 많은 사람들이 시 속에 일상적 자아이며, 개별화 또는 유형화되지 않은 '나'를 끌어들임으로써 작품을 혼란스럽게 하고, 공적 언술인 시라는 양식을 사적 언술이라는 개인적 차원으로 흔히 떨어뜨린다.』
나의 시각과 인식이 지극히 상식적인 수준임을 진단하는 계기였다.
시적 화자인 ‘나’를 실제의 ‘나’로 착각하고 사담(私談)의 공간으로 활용한 것은 詩에 대한 모독행위였다.
詩에 대하여 공부를 하는 것이 나(我)를 벗어날 수 있는 수행의 방편으로 여겨지며, 佛家에서 스님들의 오도송·열반송이 시의 형태임을 이해할 듯도 싶다.
주관적인 감정·시선을 깎고 또 깎아내서 객관적인 것만 최소한으로 남겨 볼 수 있게 하니까.
詩가 ‘그 나름대로 세계를 인식하는 한 양식’임을 미처 알지 못하고, 사적인 감정을 발산하는 공간으로 이해했다. 시 감상을 제대로 하지 못한 결과이자, 시에 대한 낮은 인식 수준을 드러내준다. 지극히 상식적인 인식과 개인적인 감정을 시의 구조를 빌어 발산하며 나의 정신건강 유지에는 도움이 되었겠지.
‘시의 구조’ 자체가 50%(50% 이상 일지도 모른다)의 심미적 효과를 가지고 있다는 ‘형식·틀’의 위대함도 알았다.
詩人에 대해서도, 詩人은 非詩人이 볼 수 없는 것(현상, 운동)을 보고 시로써 기록하고 의미를 부여하여 非詩人이 향유할 수 있게 해주는 특별한 시각을 가진 사람으로 이해했다.
그러나, 시인은 ‘볼 수 없는 것’을 보는 특별한 시각을 가진 사람이 아니라, 주의 깊게 관찰하고 탐구하는 열정으로 자연이 보여주는 것을 보고, 얻은 인식을 가시화하는 매체인 언어를 통해 하나의 미적 공간을 창조해 내는 사람이다.
즉, 선택적 시각(사고), 열정, 언어(사고) 삼박자가 고루 갖춰져야 하는 것이다.
‘의도’와 ‘작품’의 괴리는 ‘인식의 과정(분화적 사고와 미분화적 사고의 차이)과 언어화 과정(시적 언술의 이해도 차이)에서 나타난다’고 한다.
또한, 작가와 독자 앞에 놓이는 것은 ‘작품’일 뿐이므로 작가의 의도가 고스란히 작품에 녹아들 수 있도록, 인식·언어·시적구조가 유기적 구조를 갖춰야 한다.
시는 크게 묘사 형태와 진술 형태로 나눌 수 있는데, 묘사 보다는 진술 형태의 ‘시’가 나에게 맞는다.
“시적 진술은 시각적으로 드러내는 묘사와 달리 가청적·고백적·회고적 성향으로, 관찰을 통한 감지라기보다 관조를 통한 감지이다. 유의할 점은 진술형의 시에서는 훨씬 객관적이지 못한 주관적 심리학에 속하는 해석적 오류를 범할 소지가 많으므로 묘사 못지않게 우리들 정서의 밑바닥에 자리 잡고 있는 상투적인 의미체계에 새로운 충격을 줄 수 있는 깨달음(증폭작용)을 동반하는 표현이어야 한다.
진술에는 독백적·권유적·해석적 진술이 있는데, 독백적 진술은 자기감정을 적나라하게 표현하는 넋두리(이런 작품을 읽었을 때 독자는 어떤 거부감을 느끼는데, 그 거부감은 어째서 남의 넋두리를 들어야 하느냐는 것과 시가 시인의 감정을 발산하는 장소인가의 문제와 관련이 있다)와 구분해야 하고, 권유적 진술은 주어진 현실의 문제를 지나치게 단순하게, 단정적으로 바라보는 시각과 문제제기에서 즉시 해결로 이어지는 직선적 사고의 흔적인 피상적 진술(자신의 주장을 성급하게 남 앞에 내보이고 싶은 과시욕에 문제가 있다)과 구분해야 한다. 해석적 진술은 어떤 속성을 드러내고자 할 때 특정한 삶의 국면을 제시하는 설득력이 없으면 자기중심적 사고의 표현에 머물고 만다.
자기중심적 사고를 시적 차원으로 끌어올리기 위해서는 작품을 쓰는 사람 스스로가 ‘지금 나는 시를 쓰고 있다’라는 바른 의식을 갖고 있어야 한다. ‘시를 쓰고 있다는 의식은 공허한 상념의 줄다리기를 해서는 안 된다는 깊은 반성위에 위치하기 때문이다.”<‘5장 시적 진술’ 요약>
시를 사적인 감정을 발산하는 공간으로 사용하였으며 어쩌다 가끔 스치던 한 두 번의 독특한 인식을 ‘남다른 구석이 있다’라고 어디서 착각한 건가. 지독한 관념, 추상적 언어의 소모적 놀음에 빠져있다.
잘 가꾼다면 이 분야가 나의 강점이 될 것이라는 희망이 엿보이기도 하지만, 길잡이 없이 제멋대로 생각하고 변변한 반성 없이 써오던 일이 습관으로 고착되어, 고칠 수 없는 단계에 있는 것은 아닌지 저어된다.
어쨌든 나의 베껴쓰기, 두 번째 책이 되어 주었다.
오규원 시 모음 시인
http://blog.naver.com/hwangdw07/10110460493
간판이 많은 길은 수상하다
서울은 어디를 가도 간판이많다.
4월의 개나리나 전경(全景)보다
더 많다. 더러는 건물이 마빡이나 심장
한가운데 못으로 꽝꽝 박아 놓고
더러는 문이란 문 모두가 간판이다.
밥 한 그릇 먹기 위해서도 우리는
간판 밑으로 머리를 숙이고 들어가야
한다. 소주 한 잔을 마시기 위해서도 우리는
간판 밑으로 또는 간판의 두 다리 사이로
허리를 구부리고
들어가서는 사전에 배치해 놓은 자리에
앉아야 한다. 마빡에 달린 간판을
보기 위해서는 두 눈을 들어
우러러보아야 한다. 간판이 있는 곳에는
무슨 일이 있다 좌와 우 앞과 뒤
무수한 간판이 그대를 기다리며 버젓이
가로로 누워서 세로로 서서 지켜보고 있다.
간판이 많은 길은 수상하다. 자세히
보라 간판이 많은 집은 수상하다.
개봉동과 장미
개봉동 입구의 길은
한 송이 장미 때문에 왼쪽으로 굽고,
굽은 길 어디에선가 빠져나와
장미는
길을 제 혼자 가게 하고
아직 흔들리는 가지 그대로 길 밖에 선다.
보라 가끔 몸을 흔들며
잎들이 제 마음대로 시간의 바람을 일으키는 것을.
장미는 이곳 주민이 아니어서
시간 밖의 서울의 일부이고,
그대와 나는
사촌(四寸)들 얘기 속의 한 토막으로
비 오는 지상의 어느 발자국에나 고인다.
말해 보라
무엇으로 장미와 닿을 수 있는가를.
저 불편한 의문, 저 불편한 비밀의 꽃
장미와 닿을 수 없을 때,
두드려 보라 개봉동 집들의 문은
어느 곳이나 열리지 않는다.
프란츠 카프카
-MENU-
샤를르 보들레르 800원
칼 샌드버그 800원
프란츠 카프카 800원
이브 본느프와 1,000원
에리카 종 1,000원
가스통 바슐라드 1,200원
이하브 핫산 1,200원
제레미 리프킨 1,200원
위르겐 하버마스 1,200원
시를 공부하겠다는
미친 제자와 앉아
커피를 마신다
제일 값싼
프란츠 카프카
한잎의 여자(女子) 1
나는 한 여자(女子)를 사랑했네. 물푸레나무 한 잎같이 쬐그만 여자(女子),
그 한 잎의 여자(女子)를 사랑했네. 물푸레나무 그 한 잎의 솜털, 그 한 잎의
맑음, 그 한 잎의 영혼, 그 한 잎의 눈, 그리고 바람이 불면 보일 듯 보일 듯
한 그 한 잎의 순결과 자유를 사랑했네.
정말로 나는 한 여자(女子)를 사랑했네. 여자(女子)만을 가진 여자(女子),
여자(女子) 아닌 것은 아무것도 안 가진 여자(女子), 여자(女子) 아니면 아무
것도 아닌 여자(女子), 눈물 같은 여자(女子), 슬픔 같은 여자(女子), 병신(病
身) 같은 여자(女子), 시집(詩集) 같은 여자(女子), 그러나 영원히 가질 수 없
는 여자(女子), 그래서 불행한 여자(女子).
그러나 영원히 나 혼자 가지는 여자(女子), 물푸레나무 그림자 같은 슬픈
여자(女子).
겨울 숲을 바라보며
겨울 숲을 바라보며
완전히 벗어버린
이 스산한 그러나 느닷없이 죄를 얻어
우리를 아름답게 하는 겨울의
한 순간을 들판에서 만난다.
누구나 함부로 벗어버릴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더욱 누구나 함부로 완전히
벗어버릴 수 없는
이 처참한 선택을
겨울 숲을 바라보며, 벗어버린 나무들을 보며, 나는
이곳에서 인간이기 때문에
한 벌의 죄를 더 겹쳐 입고
겨울의 들판에 선 나는
종일 죄, 죄 하며 내리는
눈보라 속에 놓인다.
버스정거장에서
노점의 빈 의자를 그냥
시라고 하면 안 되나
노점을 지키는 저 여자를
버스를 타려고 뛰는 저 남자의
엉덩이를
시라고 하면 안 되나
나는 내가 무거워
시가 무거워 배운
작시법을 버리고
버스 정거장에서 견딘다
경찰의 불심 검문에 내미는
내 주민등록증을 시라고
하면 안 되나
주민등록증 번호를 시라고
하면 안 되나
안 된다면 안 되는 모두를
시라고 하면 안 되나
나는 어리석은 독자를
배반하는 방법을
오늘도 궁리하고 있다
내가 버스를 기다리며
오지 않는 버스를
시라고 하면 안 되나
시를 모르는 사람들을
시라고 하면 안 되나
배반을 모르는 시가
있다면 말해보라
의미하는 모든 것은
배반을 안다 시대의
시가 배반을 알 때까지
쮸쮸바를 빨고 있는
저 여자의 입술을
시라고 하면 안 되나
이 시대의 죽음 또는 우화
죽음은 버스를 타러 가다가
걷기가 귀찮아서 택시를 탔다
나는 할 일이 많아
죽음은 쉽게
택시를 탄 이유를 찾았다
죽음은 일을 하다가 일보다
우선 한 잔 하기로 했다
생각해 보기 전에 우선 한 잔 하고
한 잔 하다가 취하면
내일 생각해 보기로 했다
내가 무슨 충신이라고
죽음은 쉽게
내일 생각해 보기로 한 이유를 찾았다
술을 한 잔 하다가 죽음은
내일 생각해 보기로 한 것도
귀찮아서
내일 생각해 보기로 한 생각도
그만두기로 했다
술이 약간 된 죽음은
집에 와서 TV를 켜놓고
내일은 주말 여행을 가야겠다고 생각했다
건강이 제일이지―
죽음은 자기 말에 긍정의 뜻으로
고개를 두어 번 끄덕이고는
그래, 신문에도 그렇게 났었지
하고 중얼거렸다
새
커튼 한쪽의 쇠고리를 털털털 왼쪽으로 잡아당긴다 세계의 일부가 차단된
다 그 세계의 일부가 방 안의 光度를 가져가버린다 액자속에 담아놓은 세계
의 그림도 명징성을 박탈당한다 내 안이 반쯤 닫힌다 닫힌 커튼의 하복부가
불안정하게 흔들린다 다른 한쪽 커튼을 쥐고 있는 내 손이 아직 닫히지 않
고 열려 있는 세계에 노출되어 있다 그 세계에 사는 맞은편의 사람들이 보
이지 않는다 집의 門들이 닫혀 있다 열린 세계의 닫힌 창이 하늘을 내 앞으
로 반사한다 태양이 없는 파란 공간이다 그래도 눈부시다 낯선 새 한 마리
가 울지 않고 다리를 숨기고 그곳에 묻힌다 봉분 없는 하늘이 아름답다
거리의 시간
감동할 시간도 주지 않고 한 사내가
간다 감동할 시간도 주지 않고
뒷머리를 질끈 동여맨 여자의 모가지 하나가
여러 사내 어깨 사이에 끼인다
급히 여자가 자기의 모가지를 남의 몸에
붙인다 두 발짝 가더니 다시
사람들을 비키며 제자리에 붙인다
감동할 시간도 주지 않고 한 여자의
핸드백과 한 여자의 아랫도리 사이
하얀 성모 마리아의 가슴에
주전자가 올라붙는다 마리아의 한쪽 가슴에서
물이 줄줄 흐른다 놀란 여자 하나
그 자리에 멈춘다 아스팔트가 꿈틀한다
꾹꾹 아스팔트를 제압하며 승용차가
간다 또 한 대 두 대의 트럭이
이런 사내와 저런 여자들을 썩썩 뭉개며
간다 사내와 여자들이 뭉개지며 감동할
시간을 주지 않고
나는 시간을 따로 잘라내어 만든다
빈자리가 필요하다
빈자리도 빈자리가 드나들
빈자리가 필요하다
질서도 문화도
질서와 문화가 드나들 질서와 문화의
빈자리가 필요하다
지식도 지식이 드나들 지식의
빈자리가 필요하고
나도 내가 드나들 나의
빈자리가 필요하다
친구들이여
내가 드나들 자리가 없으면
나의 어리석음이라도 드나들
빈자리가 어디 한구석 필요하다
비가 와도 젖은 자는
강가에서
그대와 나는 비를 멈출 수 없어
대신 추녀 밑에 멈추었었다
그 후 그 자리에 머물고 싶어
다시 한번 멈추었었다
비가온다, 비가 와도
강은 젖지 않는다. 오늘도
나를 젖게 해놓고, 내 안에서
그대 안으로 젖지 않고 옮겨 가는
시간은 우리가 떠난 뒤에는
비 사이로 혼자 들판을 가리라.
혼자 가리라, 강물은 흘러가면서
이 여름을 언덕 위로 부채질해 보낸다.
날려가다가 언덕 나무에 걸린
여름의 옷 한자락도 잠시만 머문다.
고기들은 강을 거슬러올라
하늘이 닿는 지점에서 일단 멈춘다.
나무, 사랑, 짐승 이런 이름 속에
얼마 쉰 뒤
스스로 그 이름이 되어 강을 떠난다.
비가 온다, 비가 와도
젖은 자는 다시 젖지 않는다.
문득 잘못 살고 있다는 느낌이
잠자는 일만큼 쉬운 일도 없는 것을, 그 일도 제대로 할
수 없어 두 눈을 멀뚱멀뚱 뜨고 있는
밤 1시와 2시의 틈 사이로
밤 1시와 2시의 空想의 틈 사이로
문득 내가 잘못 살고 있다는 느낌, 그 느낌이
내 머리에 찬물을 한 바가지 퍼붓는다.
할말 없어 돌아누워 두 눈을 멀뚱하고 있으면,
내 젖은 몸을 안고
이왕 잘못 살았으면 계속 잘못 사는 방법도 방법이라고
악마 같은 밤이 나를 속인다.
살아있는 것은 흔들리면서
살아있는 것은 흔들리면서
튼튼한 줄기를 얻고
잎은 흔들려서 스스로
살아있는 몸인 것을 증명한다
바람은 오늘도 분다
수많은 잎은 제각기
몸을 엮는 하루를 가누고
들판의 슬픔 하나 들판의 고독 하나
들판의 고통 하나도
다른 곳에서 바람에 쓸리며
자기를 헤집고 있다
피하지 마라
빈 들에 가서 깨닫는 그것
우리가 늘 흔들리고 있음을.
사랑의 감옥
뱃속의 아이야 너를 뱃속에 넣고
난장의 리어카에 붙어서서 엄마는
털옷을 고르고 있단다 털옷도 사랑만큼
다르단다 바깥 세상은 곧 겨울이란다
엄마는 털옷을 하나씩 골라
손으로 뺨으로 문질러보면서 그것 하나로
추운 세상 안으로 따뜻하게
세상 하나 감추려 한단다 뱃속의 아이야
아직도 엄마는 옷을 골라잡지 못하고
얼굴에는 땀이 배어나오고 있단다 털옷으로
어찌 이 추운 세상을 다 막고
가릴 수 있겠느냐 있다고 엄마가
믿겠느냐 그러나 엄마는
털옷 안의 털옷 안의 집으로
오 그래 그 구멍 숭숭한 사랑의 감옥으로
너를 데리고 가려 한단다 그렇게 한동안
견뎌야 하는 곳에 엄마가 산단다
언젠가는 털옷조차 벗어야 한다는 사실을
뱃속의 아이야 너도 태어나서 알게 되고
이 세상의 부드러운 바람이나 햇볕 하나로 너도
울며 세상의 것을 사랑하게 되리라 되리라만
이 시대의 순수시
자유에 관해서라면 나는 칸트주의자입니다. 아시겠지만, 서로의 자유를 방
해하 지 않는 한도 안에서 나의 자유를 확장하는, 남의 자유를 방해하지 않
기 위해 남몰래(이 점이 중요합니다.) 나의 자유를 확장하는 방법은 나는 사
랑합니다. 세상의 모든 것을 얻게 하는 사랑, 그 사랑의 이름으로.
내가 이렇게 자유를 사랑하므로, 세상의 모든 자유도 나의 품 속에서 나를
사랑 합니다. 사랑으로 얻은 나의 자유. 나는 사랑을 많이 했으므로 참 많은
자유를 가지고 있습니다. 매주 주택복권을 사는 자유, 주택복권에 미래를
거는 자유, 금주의 운세를 믿는 자유, 운세가 나쁘면 안 믿는 자유, 사기를
치고는 술 먹는 자유, 술 먹고 웃어 버리는 자유, 오입하고 빨리 잊어 버리
는 자유.
나의 사랑스런 자유는 종류도 많습니다. 걸어다니는 자유, 앉아다니는 자
유(택시 타고 말입니다). 월급 도둑질 상사들 모르게 하는 자유, 들키면 뒤
에서 욕질하 는 자유, 술로 적당히 하는 자유, 지각 안하고 출세 좀 해볼까
하고 봉급 봉투 털 어 기세 좋게 택시 타고 출근하는 자유, 찰칵찰칵 택시
요금이 오를 때마다 택시 탄 것을 후회하는 자유, 그리고 점심 시간에는 남
은 몇 개의 동전으로 늠름하게 라면을 먹을 수 있는 자유.
이 세상은 나의 자유투성이입니다. 사랑이란 말을 팔아서 공순이의 옷을
벗기는 자유, 시대라는 말을 팔아서 여대생의 옷을 벗기는 자유, 꿈을 팔아
서 편안을 사 는 자유, 편한 것이 좋아 편한 것을 좋아하는 자유, 쓴 것보다
달콤한 게 역시 달 콤한 자유, 쓴 것도 커피 정도면 알맞게 맛있는 맛의 자
유.
세상에는 사랑스런 자유가 참 많습니다. 당신도 혹 자유를 사랑하신다면
좀 드 릴 수는 있습니다만.
밖에는 비가 옵니다.
시대의 순수시가 음흉하게 불순해지듯
우리의 장난, 우리의 언어가 음흉하게 불순해지듯
저 음흉함이 드러나는 의미의 미망(미망), 무의미한 순결의 뭄뚱이, 비의
몸뚱이들……
조심하시기를
무식하지도 못한 저 수많은 순결의 몸뚱이들.
호수와 나무
잔물결 일으키는 고기를 낚아채
어망에 넣고
호수가 다시 호수가 되도록
기다리는 한 사내와
귀는 접고 눈은 뜨고
그러나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개 한 마리
물가에 앉아 있다
사내는 턱을 허공에 박고
개는 사내의 그림자에 코를 박고
건너편에서 높이로 서 있던 나무는
물속에 와서 깊이로 다시 서 있다
하늘과 두께
투명한 햇살 창창 떨어지는 봄날
새 한 마리 햇살에 찔리며 붉나무에 앉아 있더니
허공을 힘차게 위로 위로 솟구치더니
하늘을 열고 들어가
뚫고 들어가
그곳에서
파랗게 하늘이 되었습니다
오늘 생긴
하늘의 또다른 두께가 되었습니다
허공과 구멍
나무가 있으면 허공은 나무가 됩니다
나무에 새가 와 앉으면 허공은 새가 앉은 나무가 됩니다
새가 날아가면 새가 앉았던 가지만 흔들리는 나무가 됩니다
새가 혼자 날면 허공은 새가 됩니다 새의 속도가 됩니다.
새가 지붕에 앉으면 새의 속도의 끝이 됩니다 허공은 새가 앉은 지붕이 됩
니다
지붕 밑의 거미가 됩니다 거미줄에 날개 한쪽만 남은 잠자리가 됩니다
지붕 밑에 창이 있으면 허공은 창이 있는 집이 됩니다
방 안에 침대가 있으면 허공은 침대가 됩니다
침대 위에 남녀가 껴안고 있으면 껴안고 있는 남녀의 입술이 되고 가슴이
되고 사타구니가 됩니다
여자의 발가락이 되고 발톱이 되고 남자의 발바닥이 됩니다
삐걱이는 침대를 이탈한 나사못이 되고 침대 바퀴에 깔린 꼬불꼬불한 음모
가 됩니다
침대 위의 벽에 시계가 있으면 시계가 되고 멈춘 시계의 시간이 되기도 합
니다
사람이 죽으면 허공은 사람이 되지 않고 시체가 됩니다
시체가 되어 들어갈 관이 되고 뚜껑이 꽝 닫히는 소리가 되고 땅속이 되고
땅속에 묻혀서는 봉분이 됩니다
인부들이 일손을 털고 돌아가면 허공은 돌아가는 인부가 되어 뿔뿔이 흩어
집니다
상주가 봉분을 떠나면 모지를 떠나는 상주가 됩니다
흩어져 있는 담배꽁초와 페트병과 신문지와 누구의 주머니에서 잘못 나온
구겨진 천원짜리와 부서진 각목과 함께 비로소 혼자만의 오롯한 봉분이 됩
니다
얼마 후 새로 생긴 봉분 앞에서 집으로 돌아가는 길이 달라져 잠시 놀라는
뱀이 됩니다
뱀이 두리번거리며 봉분을 돌아서 돌틈의 어두운 구멍 속으로 사라지면 허
공은 어두운 구멍이 됩니다
어두운 구멍 앞에서 발을 멈춘 빛이 됩니다
어두운 구멍을 가까운 나무 위에서 보고 있는 새가 됩니다.
강과 둑
강과 둑 사이 강의 물과 둑의 길 사이 강의 물과 강의 물소리 사이 그림자
를 내려놓고 서 있는 미루나무와 미루나무의 그림자를 몸에 붙이고 누워있
는 둑 사이 미루나무에 붙어서 강으로 가는 길을 보고 있는 한 사내와 강물
을 밟고서 강 건너의 길을 보고 있는 망아지 사이 망아지와 낭미초 사이 낭
미초와 들찔레 사이 들찔레 위의 허공과 물 위의 허공 사이 그림자가 먼저
가 있는 강 건너를 향해 퍼득퍼득 날고 있는 새 두 마리와 허덕허덕 강을 건
너오는 나비 한 마리 사이
우리들의 꿈이 그러하다 - 오규원
비상하는 새의 꿈은
날개 속에만 있지 않다 새의 꿈은
그 작디작은 두 다리 사이에도 있다
날기 전에 부드럽게 굽혔다 펴는
두 다리의 운동 속에도 그렇고
하늘을 응시하는 두 눈 속에도 있다
우리들의 꿈이 그러하다
우리의 몸속에 숨어서 비상을
욕망하는 날개와 다리와 눈을 보라
언제나 미래를 향해 그것들을 반짝인다
모든 나무의 꿈이 푸른 것은
잎이나 꽃의 힘에만 있지 않다
나무의 꿈이 푸른 것은
막막한 허공에 길을 열고
그곳에서 꽃을 키우고 잎을 견디는
빛나지 않는 줄기와 가지가 있기 때문이다
우리들의 꿈이 그러하다
깜깜한 대지에 뿌리를 내리고
숨어서 일하는 혈관과 뼈를 보라
우리의 새로움은 거기에서 나온다
길이 아름다운 것은
미지를 향해 뻗고 있기 때문이듯
달리는 말이 아름다운 것은
힘찬 네 다리로
길의 꿈을 경쾌하게 찍어내기 때문이듯
새해가 아름다운 것은 그리고
우리들의 꿈이 아름다운 것은
새롭게 시작하는 사람들의
비상하는 날개와 다리와 눈과
하늘로 뻗는 줄기와 가지가
그곳에 함께 있기 때문이다
안개 - 오규원
강의 물을 따라가며 안개가 일었다
안개를 따라가며 강이 사라졌다 강의
물 밖으로 오래 전에 나온
돌들까지 안개를 따라 사라졌다
돌밭을 지나 초지를 지나 둑에까지
올라온 안개가 망초를 지우더니
곧 나의 하체를 지웠다
하체 없는 나의 상체가
허공에 떠 있었다
나는 이미 나의 지워진 두 손으로
지워진 하체를 툭 툭 쳤다
지상에서 보이지 않는 존재가
강변에서 툭 툭 소리를 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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