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발자국/고향이야기

내 고향 상동면 옥산리 여수동

철산. 케네디 2015. 9. 3. 05:13

                           

                                내 고향 상동면 옥산리 여수동

 

    상동면(上東面)

 

상동면의 지세와 연혁

 

운문산 줄기가 서남으로 힘차게 뻗어내린 곳에 우뚝하게 되솟은 소천봉을 중심으로 그 북쪽 오지에는 신곡, 매화 두 동리가 자리 잡았고, 남쪽에는 도곡리, 서쪽으로는 고정리 라는 산중 분지를 형성하였다. 그리고 소천봉(小天峰)에서 다시 서남쪽으로 산자락이 흘러내려 낙하산(落霞山)과 보두산(步斗山)이 우뚝한 봉우리를 이루었는데 그 서편으로는 금산리, 남쪽으로는 가곡리 등 역사 깊은 동리가 자리 잡고 있다.

 

금산, 가곡 두 마을 앞에 펼쳐진 넓은 들판 너머에는 동창천과 청도천의 물을 함께 모은 북천수가 남북으로 길에 흘러 이 면의 젓줄이 되어 있다. 응천강(凝川江) [() 레나 : 응천강은 밀양강의 옛 이름임, 사행천이 더 발달하면 응천이 됨] 상류에 해당하는 북천수 건너에 자리 잡은 안인리는 옥교산을 서쪽으로 등지고 있으며, 그 북쪽에 위치한 옥산리는 험준한 철마산을 배경으로 유천 앞으로 마을이 열려 있다

 

이 면의 동쪽 경계는 용암봉을 사이에 두고 산내면 용전리와 인접해 있으며, 서쪽으로는 옥교산을 분수령으로 하여 부북면과 경계를 이루고 있다. 남쪽에는 중산(中山), 낙하산(落霞山), 비학산 등의 능선을 경계로 하여 산외면과 이웃해 있고, 북쪽에는 운문산을 사이에 두고 경북 청도군과 도계를 이루고 있는 곳이다.

비록 사방으로 첩첩이 둘러 싸여 있으나 이 지대의 젖줄이라 할 운문천(동창천)과 북천수(밀양강)를 중심으로 그 언저리에는 들마들, 원아래들, 밤갯들, 중섬들, 빈지들, 신안들과 같은 기름진 들판이 군데군데 전개되어 산 좋고 물이 맑아, 인심 좋은 고장으로 평판이 높은 곳이다

상동면이란 이름은 조선 초기 밀양도호부 시대 이래 줄곧 변함없이 사용되어 온 것으로 그 위치가 북동쪽(상동)이라 한데서 연유한 것이다. 이는 부의 정동쪽을 중동면으로, 남동쪽을 하동면으로 이름지은 것과 대비가 되는 일이라 할 수 있다

1884(고종 21) 행정 구역 정비 시에도 그대로 상동면이라 했으며, 면사무소를 고답리에 두었는데 1912년에 이르러 사지(사포동)를 경북 청도군으로 넘겨주는 대신 청도군에 속했던 대율포(용운동)를 편입하여 행정 구역을 재편하였다. 1930년에는 면사무소를 고답에서 옥산리로 옮겨왔으며, 해방후 1948년에는 다시 금산리로 이전하여 지금에 이르렀다.

  밀주구지에 나타나 있는 상동면의 방리를 보면 평능리, 가곡, 신원, 구칠, 금곡, 유천, 분항, 고답, 사지, 오곡 등의 지명이 있는데, 이는 대체로 지금 이 면에 소속된 마을이며, 그 후 청도군과의 경계 조정시 일부 마을이 넘어가고 편입되는 과정을 거쳤다.

 

또 상동면은 이미 오랜 옛날부터 운문천을 사이에 두고 경북과의 도계를 이루어 온 만큼 그 지리와 역사상의 특수한 유적과 고담도 많은 곳이다. 고대 이서국의 접경지로서 마전암에 얽힌 고사를 비롯하여 평능부곡지, 철마산성지, 경락암, 밀암, 박연정이 있는가 하면, 삼남대로에 이르는 유일한 교통 요충지로서 금곡원, 신원, 분항봉수대, 유천관, 같은 교통 통신의 유적지도 있다. 현재 면내에는 8개의 법정리와 31개의 자연마을이 있다

 

4. 옥산리(玉山里)

 

화악산 줄기가 동쪽으로 뻗어 내린 곳에 다시 철마산의 봉우리가 우뚝 솟아 있다. 이 산 남쪽 기슭에 동서를 가로 지르며 형성된 동리인데서, , 북 세 개 방향은 산으로 둘러 쌓이고 동쪽 한 곳에만 빠안하게 출구가 나 있는 아름다운 산촌이다. 동리의 동북쪽은 응천강 상류인 북천수의 하구로서 청도천, 운문천이 만나는 지점인데 옛날부터 교통상의 요충지로 경북 청도군과 도계를 이루는 곳이다. 서남쪽으로는 말티고개를 중심으로 산의 능선을 통하여 부북면과 경계를 이루고 있으며 금산리 안인리와도 이웃하고 있다. 북쪽으로 철마산을 분수령으로 하여 도계를 이루고 있는데 동리의 형세가 마치 거북이가 기어가는 모양을 하고 있다.

1914년 행정 구역 개편시에 옥산과 여수를 합하여 옥산리라는 법정리를 만들었고 그 후 경부선 철도의 유천역이 들어선 후 1930년에서 1947년까지 상동면사무소의 소재지가 되었다.

이 동리는 산세가 좋고 물이 좋아 옥출곤강(玉出崑崗)이요 김생여수(金生麗水)라 했는데 옥산, 여수, 김생이란 지명도 자연스러운 바가 있다. 지금은 옥산, 내여수, 외여수, 관촌 등 네 자연마을로 구성되었다

 

(1) 옥산동(옥산, 구역)

 

이 곳은 청도천, 운문천이 합쳐져서 북천수가 되어 흐르는 하구 마을이다. 옛날부터 수세가 아름답고 경색이 좋다고 하여 수세량이라는 이색적인 지명도 있었거니와 조선 초기 이래 금곡원과 유천관이 자리잡은 곳으로 양산의 황산도와 청도의 성현도가 연결되는 삼남 대로상 요충지요 역말 도회였다

금곡원은 처음에 여수동에 설치되었다가 그 뒤 옥산동에 있었던 유천관에 기 기능을 합쳤으며, 임진왜란 후 다시 안인리에다 신원을 두고 이 곳에는 유천역을 두었다. 이 때 유천관은 청도천을 사이에 두고 청도쪽에다 객관을 하나 더 설치함으로서 두 개가 되었으며 옥산의 유천관은 역과 관의 기능을 겸하였다. 1904년 경부선 철도의 부설로 옛날의 역관 자리에는 유천역이 들어섰고 1914년에는 여수동을 합병하여 동명을 옥산리로 고쳤으며 1930년에는 상동면사무소가 고답리에서 이곳으로 이전되어 면소재지가 되었다.

 

1945년에는 역사가 금산리로 옮겨짐에 따라 옥산과 여수는 다시 분동되어 이 곳은 철도역사가 있던 곳이라 하여 동명을 구역이라 불렀으며 1947년에는 면사무소와 기관들이 차례로 모두 금산리로 옮겨갔다

1950년에는 또 다시 구역이란 지명을 옥산리로 바꾸어 불렀는데 이 마을은 옛날 원, , 역과 경부선 철도역의 변천에 따라 마을의 연혁도 변화가 많은 역말이라 할 수 있다

 

? 유천 소주터

 

옥산리에 있는 구역의 수십호 민가에서 그 전에 이 지역의 전통술인 소주를 양조하던 구지이다. 이 마을은 경남.북도의 경계 지점으로 일제 말기에 각종 물자의 통제가 극심했을 때도 밀조주의 단속을 쉽게 피할 수 있는 이점이 있는 지대였다. 옛날부터 역관을 중심으로 주로 관청에 공급하던 이른바 전통술인 유천소주였으나 양조도 이 마을 주민들에 의해 비밀리에 그 기법이 유지되어 오고 있었다.

유천소주는 그 빛깔이 맑아 찬물처럼 무색하고 화근내가 나는 듯한 미묘한 향기에다 도수가 매우 높았으나 아무리 취하여도 뒤탈이 없는 순수 곡주로 유명하였다. 지금은 양조하던 민가가 거의 없어졌고 그 기법의 전수도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 한다

 

? 야시듬

 

구역마 뒷산에 있는 등성이로 이 곳에서 야시가 울면 건너편 금산리에 꼭 초상이 난다고 전해지고 있다

 

? 왜놈바위

 

구역 마을 뒤에 잇는 바위 이름으로 전하는 말로는 임진왜란 때 왜적이 이곳을 병참의 요지로 사용했다고 한다

 

? 유천나루

 

옥산리 관마을 앞에 있었던 나루터로 건너편 청도의 청도의 유호동으로 연결되었다. 옛날에는 삼남대로를 잇는 중요한 나루터의 하나였으나 지금은 없어졌다

 

? 원아랫들(원하평)

 

구역 마을 앞에 있는 들판인데 유천역원 아래쪽 들이라는 뜻으로 생긴 지명이다. 넓지는 않지만 수리가 좋고 토질이 비옥한 들이다

 

(2) 여수동(여수, 수세량, 옥산)

 

철마산 주룡 남쪽에 사면이 산으로 둘러 쌓인 아늑하게 자리 잡은 것이 안여수이고 서쪽으로 출구를 따라 금산리 앞 강을 마주보고 있는 땀이 바깥여수이다

옛날 금곡원의 당초 원터는 철마산 아래 절터였던 경치 좋은 곳으로 수세가 좋았다고 하여 처음 수세량이라 했다가 그 후 여수로 고쳤다고 한다.

조선 초기에는 지금의 구역과 관촌을 합하여 한 때 옥산이라 했는데 마을 뒷산에 금이 나는 금생굴이 있어 금생여수라 했듯이 옥출곤강(玉出崑崗)에서도 동명이 없을 수 없다 하여 옥산이라 했다고 한다

해방 후에는 다시 구역, 관촌과 분리하여 여수로 환원되어 지금에 이르렀다. 마을이 형성된 시초는 임진왜란 때 금생굴에서 김씨성을 가진 사람이 피난을 한 이후에 눌러 살았다 하며 세거지로 삼았다 한다. 그 이후에도 밀성 박씨, 벽진 이씨,가 차례로 들어와 살았고, 근대에도 파평 윤씨, 경주 최씨 등이 입촌하여 살고 있다

 

? 철마산성지

 

안여수 마을 주산으로 험준하다. 옛날 잔군이 암굴에서 철마를 타고 나왔다는 전설 때문에 생긴 산 이름인데 화악산 줄기의 대표적인 명산이다. 정상에는 아직도 성터가 남아 있고, 주위에는 높고 험한 산줄기가 이어져 천험의 요새를 이루고 있다.

,, 서 세 방향에 돌로 쌓은 석성의 흔적이 남아 있으며 불암이라고 하는 절벽에는 장군이 나왔다는 바위굴이 지금도 있다

그 바위굴은 장군이 말을 매어두고 사육했던 곳이라 하여 암반의 여기저기에는 장군의 손과 발자국이 있다고 한다. 어느 시기에 이 산 정상에 있는 한 납작한 큰 바위 위에 쇠를 녹여서 만든 말 한 마리를 안치해 둔 일이 있는데 이를 탐낸 근동의 대장장이가 훔쳐가지고 여러 가지 연장을 만들어 팔아버렸더니 그만 동티가 나서 그 대장장이가 망해버렸다는 전설이 있다

 

? 불덩어리산

 

여수 마을 동쪽에 잇는 산이다. 임진왜란 때 왜적을 막기 위하여 작은 성을 쌓고 그 속에 화약을 장치해 두었는데 왜적이 그것을 먼저 알고 불을 지러 폭발시켰다고 한다. 우리 군사들은 요긴한 화약을 한 번 써 보지도 못한 채 성과 산을 태워버렸는데 그 때 충천했던 불길을 한탄하며 마을 사람들은 마치 불덩어리산이라고 한데서 생긴 이름이다

 

? 장구산(잠두산, 장기산, 잠두산)

 

여수동 뒷산이다. 먼 옛날에 천지가 개벽할 때 큰 홍수가 나서 이 산 꼭대기가 마치 장기판 만큼이나 남아 있었는데 지금도 바라보면 네 다리로 받치고 있는 장기판 형상과 같다고 한다. 또 잠두산이라는 일명이 있는 것은 방향이 다른 데서 보면 누에머리 모양 같다 하여 붙인 이름이다. 산 뒷들에는 있는 논을 장구베미라 했다

 

? 독지뫼(홍산)

 

여수동 배밭등 아래 옛날에 독(항아리의 큰 것)을 굽었던 옹기굴 자리가 있다. 독지뫼 또는 독대뫼라고 한 것은 독을 굽던 산이라는 뜻에서 나온 지명이다

 

? 노적봉

 

여수 마을 앞산을 가르키는데 그 모양이 마치 볏단을 쌓아둔 노적같은 산봉우리라 하여 붙인 이름이다

 

? 멀채고개(마안령, 말치고개, 마치령)

 

여수동에서 부북면 위양리로 넘어가는 고개의 이름이다. 상동면 사람들은 말채고개 부북면 사람들은 말치고개라고 했으며 말죽고개라는 다른 이름도 잇는데 이 고개에는 옛날 내왕하던 교통요지였으나 지금은 거의 패쇄되엇다. 말채는 말채찍의 준말로 고개 위에는 말채로 사용하는 나무가 많고 말채찍을 휘두르며 넘는다 하여 생긴 이름이다

말죽고개는 이 고개 위에서 말을 쉬게 하면서 죽을 끓이는 곳이라 하여 붙인 이름인 것 같다. 또 이 고개 위에는 크다란 돌무덤이 지금도 남아 있는데 오르내리는 행인들이 돌을 주워 던짐으로써 쌓인 조산이다. 이는 고개를 넘을 때 산신령을 경계하는 의미로 행차의 무사를 비는 민속이다

 

? 범딤이(범림이, 호암)

 

화악산에서 여수동으로 내려오는 비탈길에 큰 바위돌이 있고 그 중 한 바위 밑에는 옛날에 범이 살던 범굴이라고 한다. 옛날 화악산 인근에 살던 주민들은 호랑이의 환난을 매우 두려워 하였는데 그것을 이 산등성이에 호랑이가 많이 살았기 때문이다. 범딤이는 그 중에서 한 호랑이의 소굴로 마을 사람들이 모두 경계한 곳이다. 범림이라고도 한다

 

? 삼밭골(산막곡)

 

여수 마을 북쪽에 있는 깊숙한 골짜기의 이름이다. 골이 깊어 바람이 거의 없는 지대여서 옛날부터 삼을 재배하기에 적지라고 하였다. 지명이 삼밭이 된 것은 삼에서 온 것이지만 산막으로 변음이 되어 산막으로 표기 된 듯하다

 

? 여수내(여수천)

 

범딤이의 여러 골짜기의 물이 모여서 마을 앞 노적봉 기슭을 흘러 응천강 상류로 합류되는 내이다. 물이 맑아 여수천이라고도 한다

 

? 뒷들목(후평지)

 

여수 마을 뒤에 있는 들판의 못이라 하여 뒷 들못이다

 

? 가옥골못

 

가옥골못은 말채고개 밑에 잇는데 골짜기의 이름이 가옥골이라 하여 붙인 못 이름이다

 

? 옥개 죽은 자리의 전설

 

옛날 유병정이라는 사람이 이 마을에 살아T. 어느 날 그가 선산에 성묘를 하러 갔더니 증조부의 산소가 파헤쳐져 있었다. 이 놀랍고 어처구니 없는 사건의 범인을 찾기 위하여 당장 혈안이 되엇다. 온작 노력과 고생 끝에 범인이 누구인가는 알아내었지만 그 범인은 이미 죽어버렷고, 손자인 옥개라는 자가 이 근동에 산다는 것을 확인했다. 드디어 범인의 손자 옥개를 이 곳 노적봉 기슭에서 만나 불문곡직하고 분김에 그를 때려 죽이므로서 선조의 원한을 풀었다. 그 옥개를 때려 죽인 곳이라 하여 옥개 죽은 자리가 지금도 남아 있다

 

(3) 관마을(관촌)

 

관마는 옥산리 구역의 다른 이름인데 옛날에 유천관이;라는 객사가 있었다 하여 전해지는 지명이다. 지금도 구역 마을과 별도로 유천 나루터 강 가 관마을 (관촌)이라는 마을이 있으니 경북 청도읍에 행정 구역이 속해 있는 초현, 관리와 골목을 사이에 두고 도계를 이루고 있다. 지금은 철교와 국도 교량이 나 있으나 옛날에는 번창한 관마을이요 나루터였다

 

? 강정모랭이

 

여수동에서 밀양시로 돌아가는 모롱이다

 

? 건들방우

 

여수동 뒷산에 있는 건들거리는 바위 이름이다

 

? 뒷들방천

 

여수동 서쪽에 있는 들을 뒷들이라 하며, 그 들의 젭방을 뒷들방천, 그 등성이를 뒷등이라 했다

 

? 동교

 

옥산이에서 금호리로 건너가는 다리인데 콘크리트 교각으로 길이는 204미터, 폭이 8미터이다

 

? 장군재

 

구곡 안마 북쪽에 있는 산으로 옛날에 장수가 무예를 닦던 곳이라 전해온다. 장수의 손가락 자국이 남아 있으며 장군 바위도 그 곳에 있다

 

 

          

 

 

 

 

 

 

 

 

 

 

 

 

 

 

 

 

 

 

 

 

 

 

 

 

 

 

 

 

 

 

남산(南山 870m) 산행코스는 북쪽 화양읍 동상리와 동쪽 청도읍 방면 코스가 발달되어 있다. 그 중에서도 가장 왕래가 잦은 코스는 바로 청도산악회가 정비해 놓은 A, B, C, D 코스다. 이 코스들은 해발 450m 지점에 있는 신둔사라는 고찰을 중심으로 방사상(放射狀)으로 뻗은 네 가닥 등산로다. 위험한 곳이 없고 산행거리가 짧아 초심자나 가족단위 산행에 적합하다.

신봉리~죽림사~북릉~남산 정상


화양읍 신봉리에서 죽림사로 들어가는 길은 홍도 마을을 지난다. 홍도 마을은 청도 복숭아의 원산지로 200여 년 전부터 이 마을에 복숭아가 번성했다 한다. 남산을 뒤덮은 복숭아꽃이라는 뜻인 오산도화(鰲山桃花)는 바로 이 홍도 마을을 두고 한 말이다.

신봉리에서 20분 거리인 홍도 마을 ‘청도복숭아 유래비’를 지나면 주변이 온통 복숭아 과수원이다. 과수원 사이 농로를 따라 30분 가량 올라가면 죽림사 마당으로 올라선다. 마당으로 들어서기 직전 오른쪽 송림 사이로 등산로가 시작된다. 5분 거리에 이르면 북릉으로 이어진다. 50분 가량 올라가면 바위지대가 나타난다.

낙타 등허리를 닮은 기암을 지나고, 높이 10m 가량 되는 삼각형 바위를 오른쪽으로 우회해 5~6분 오르면 약수터 갈림길 푯말(약수터 255m, 정상 850m, 죽림사, 1,590m)이 나온다. 약수터는 A코스 방면 사면에 있다. 푯말에서 직진, 가파른 북릉 길로 15분 오르면 오른쪽으로 휘돌아 절벽 상단부를 횡단한다.

상단부를 건너면 곧이어 향죽 마을 갈림길 푯말에 닿는다. 계속 가파른 북릉으로 2~3분 오르면 왼쪽 아래로 죽림사 지붕이 아찔하게 전망되는 829.2m봉에 닿는다. 삼각점을 뒤로하고 7~8분 오르면 A코스와 만나는 헬기장으로 올라선다. 이어 4~5분 가면 남산 정상이다.

• 신봉리 버스정류소를 출발해 홍도~죽림사~북릉~헬기장을 경유해 정상에 오르는 거리는 약 4.5km로, 2시간30분 안팎이 소요된다.

동천리~남산골~A코스~남산 정상


동천리 버스정류소인 동천슈퍼에서 남쪽 신둔사 가는 길로 50분 가량 들어가면 체육시설 아래 남산13곡 안내판 앞 삼거리에 닿는다. 왼쪽 신둔사 방면 자동차길이 편하지만, 오른쪽 남산골 계곡 안 남산13곡을 보게 되는 계곡길이 더욱 운치 있다. 계곡길로 들어가 30분 거리에 이르면 마지막 13곡인 금사계(金沙界)에 닿는다.

금사계는 옛날 이곳에서 몸과 마음을 청결하게 한 다음, 신둔사로 들어갔다는 얘기가 전해지는 곳이다. 금사계에서 약 100m 오르면 아래 체육시설에서 올라오는 자동차길과 만난다. 곧이어 남산기도원과 신둔사 길이 갈라지는 삼거리에 닿고, 신둔사 방면으로 약 100m 들어서면 A코스 안내푯말((남산 정상 1,850m)과 스텐리스스틸 안내판이 있는 작은 공터에 닿는다.

이곳에서 오른쪽 계곡으로 들어가는 길이 A코스다. 계곡길로 들어가 약 100m 가면 오른쪽으로 계류를 건넌다. 지계곡 입구에 ‘남산약수’ 푯말이 있다. 이 푯말 방향 계곡을 따라 5~6분 들어가면 산길은 오른쪽 사면길로 이어진다. 사면길은 북쪽으로 향하다가 5분 거리에서 서쪽 계곡 안으로 휘돌아 들어간다.

서쪽 계곡 안으로 가는 사면 길은 5~6분 거리에서 왼쪽 지그재그 산길로 이어진다. 8~9분 오르면 푯말(전망대 390m, A코스 기점 800m)이 있는 장군샘에 닿는다. 장군샘을 뒤로하고 15분 가량 오르면 청도산악회에서 이름 붙인 아래전망대~윗전망대라는 너럭바위를 지난다. 너럭바위를 뒤로하고 10분 가량 오르면 서쪽 죽림사길인 북릉 방면 약수터 갈림길 푯말(정상 570m, 헬기장 390m, 전망대 90m, 약수터 170m)에 닿는다.

약수터 갈림길에서 왼쪽 능선길로 25분 거리에 이르면 6m 밧줄 2개가 매인 바위에 닿는다. 밧줄 오른쪽으로 우회길도 있다. 바위 위로 올라가면 남산골과 신둔사가 조망되고 남산골 건너로는 은왕봉이 마주보인다. 이어 10분 더 오르면 죽림사 갈림길과 만나는 헬기장이고, 4~5분 더 가면 정상이다.

• 화양읍 동천수퍼를 출발해 남산골~A코스를 경유해 정상에 오르는 산행거리는 약 5 km로, 3시간30분 안팎이 소요된다.

신둔사~B코스~한재고개~남산 정상


남산기도원 갈림길에서 약 300m 더 오르면 신둔사 주차장에 닿는다. 주차장에서 남서쪽 계곡이 남산골 상류로 B코스다. 푯말(남산 2.5km) 오른쪽으로 난 계곡길로 7~8분 가면 오른쪽 계류에 어깨 높이 돌탑 2기가 있다. 돌탑 옆으로 계류를 건넌다. 이어 숲길로 2~3분 올라가면 합수점에 있는 높이 20m 와폭이 눈길을 끈다. 상류로 7~8분 더 들어가면 또 20m 높이 와폭이 나타난다.

이곳에는 와폭이 2개나 있다. 와폭을 지나 10분 거리에 이르면 마지막 합수점에 닿는다. 이곳에서 오른쪽 지류를 건너, 왼쪽 계곡으로 들어선다. 이어 8~9분 더 오르면 오른쪽 묘 방면 갈림길이 있다. 갈림길을 지나면 이제까지 풍요롭던 계곡수가 갑자기 사라진다. 건천으로 변모한 계곡으로 10분 가량 오르면 길은 오른쪽 지능선으로 이어진다.

지능선으로 20분 오르면 삼면봉 동릉 상의 한재고개(정상 750m, 신둔사 1,740m, 봉수대능선 1,560m 푯말)에 이른다. 고개를 뒤로하고 10분 거리에 밧줄 2개가 걸린 급경사 바위를 오른 다음, 1~2분 더 가면 삼면봉에 닿는다. 남쪽 밤티재 방면 능선길이 뚜렷한 삼면봉에서는 남으로 화악산이 마주보인다. 삼면봉을 뒤로하고 북쪽 능선길로 15분 가면 정상이다.

• 화양읍 동천수퍼를 출발해 신둔사 주차장~남산골 상류~한재고개~삼면봉을 경유해 정상에 오르는 산행거리는 약 6km로, 3시간 안팎이 소요된다.

신둔사~C코스~거북바위~한재고개~남산 정상


C코스 기점은 신둔사 대웅전 앞 오층석탑이다. 석탑 오른쪽 20m 거리에 삼거리가 있다. 이 삼거리에서 왼쪽 길은 D코스, 오른쪽이 C코스다. C코스로 40분 오르면 낙대폭포 방면 길과 만나는 능선 삼거리에 닿는다. 푯말(봉수대능선 430m, 낙대폭포 2,060m, 신둔사 1,300m)은 특이하게 나무에 묶여 있다.

이 삼거리를 뒤로하고 10분 오르면 거북바위에 닿는다. 거북바위를 뒤로하고 5분 거리에 이르면 봉수대 능선과 만나는 삼거리(정상 2,310m, 적천사 2,100m, 낙대폭포 입구 2,490m, 신둔사 1,730m 푯말)로 올라선다. 삼거리에서 서쪽 한재고개로 가는 능선은 청도읍과 화양읍 경계를 이룬다. 이 능선으로 3~4분 가면 암릉길로 들어선다.

한재 마을 방면이 십수 길 절벽이고, 곳곳에 반석을 이룬 암릉을 따라 분재 같은 노송들이 줄줄이 나타나 비경을 이룬다. 한 폭 동양화 속에 스며드는 기분이 나는 암릉길은 수백m 이어진다. 분지를 이룬 한재 마을에 모자이크처럼 자리한 수십 개 비닐하우스들은 모두가 미나리 재배장이다. 암릉으로 약 30분 가면 신둔사 방면 B코스와 만나는 한재고개에 닿는다. 한재고개 이후로는 삼면봉을 경유해 정상으로 향한다.

• 동천리를 출발해 신둔사~거북바위~봉수대능선 삼거리~한재고개~삼면봉을 경유해 정상에 오르는 거리는 약 8km로, 3시간30분 안팎이 소요된다.

D코스는 신둔사 오층석탑 오른쪽 20m 거리 삼거리에서 왼쪽(동쪽) 가파른 협곡으로 오른다. 20분 가량 오르면 낙대폭포 방면 길과 만나는 은왕봉 남쪽 안부(낙대폭포 1,780m, 신둔사 525m, 봉수대능선 1,310m 푯말)에 닿는다. 안부에서 능선길로 5분 오르면 오른쪽 남산골 건너로 남산 정상이 마주보이는 작은 전망바위에 이른다.

전망바위를 뒤로하면 산불감시용인 듯한 비닐 움막이 있다. 움막을 지나 20분 오르면 신둔사에서 올라오는 C코스와 만나는 삼거리에 닿는다. 이어 거북바위~봉수대 능선 삼거리~한재고개~삼면봉을 거쳐 정상으로 향하면 된다. D코스는 C코스와 거리와 소요시간이 거의 같다.

낙대폭포~거북바위~봉수대능선 삼거리~남산 정상


청도군청 앞에서 남서쪽 낙대폭포로 가는 길은 비좁은 포장길이다. 이 길을 따라 약 1.5km 올라가면 매표소에 닿는다. 매표소에서 시작되는 협곡 안 계곡으로 6~7분 들어가면 낙대폭포에 닿는다. 30여m 높이인 낙대폭포는 신경통에 효험이 있다고 하여 일명 약수폭포로 불리기도 한다.

이 폭포는 여름철이면 물맞이를 즐기는 피서객들로 붐빈다. 폭포 아래에서 왼쪽 돌계단으로 4~5분 오르면 작은 철문을 통과한다. 곧이어 능선마루에 있는 묘 1기에 닿는다. 묘를 지나 왼쪽 계곡방면 길로 2~3분 가면 작은 저수지를 지나간다. 이 저수지 물은 가두어 두었다가 낙대폭포로 흘려보낸다고 한다.

작은 저수지를 뒤로하고 10분 오르면 낙엽송숲 공터에 통나무 의자가 있는 쉼터에 닿는다. 쉼터에서 10분 더 오르면 오른쪽으로 계류를 건넌다. 계류를 건너면 푯말(봉수대 능선 1,890m, 남산 정상 3,647m)이 있다. 푯말에서 낙엽송숲 속으로 이어진 산길로 20분 오르면 신둔사에서 올라오는 D코스와 만나는 은왕봉 남쪽 안부에 닿는다. 이후 C코스 삼거리~거북바위~봉수대능선 삼거리~한재고개~삼면봉을 거쳐 정상으로 향하면 된다.

• 청도군청을 출발해 낙대폭포~은왕봉 남쪽 안부~거북바위~봉수대 능선 삼거리~한재고개~삼면봉을 경유해 정상에 오르는 거리는 약 7.5km로, 3시간 안팎이 소요된다.

우체국~대포산·봉수대 능선~한재고개~남산 정상


남산 동릉에 해당되는 봉수대능선은 철쭉꽃이 워낙 많이 피어나 일명 꽃밭등이라 부르기도 한다. 봉수대능선은 청도역과 시내버스터미널에서 직접 산행이 된다는 것과, 청도읍내가 시원하게 조망되는 상여듬바위와 봉수대 등 명소가 있어 최고로 치는 코스다. 우체국 옆에서 서쪽 오르막길로 약 100m 오르면 보현사 입구 갈림길에 이른다.

이곳에서 오른쪽 보현사를 지나 용화사를 경유하면 바로 봉수대 능선길로 이어진다. 보현사 입구에서 왼쪽(남쪽) 콘크리트 포장길을 따르면 사방이 감나무밭이다. 감나무밭 사이 길로 25분 가량 가면 체육공원에 이른다. 체육공원을 지나 밤골가든 삼거리(적천사 2,310m, 정상 5,990m 푯말)에서 밤골가든 앞마당을 지나면 봉수대능선으로 오르는 길이 이어진다.

이 길로 30분 오르면 용화사에서 오는 길과만나는 삼거리(보현사 1,170m, 대포산 능선, 2,100m, 체육공원 600m 푯말)에 이른다. 이어 봉수대능선을 타고 40분 오르면 대포산 북사면길로 들어선다. 철쭉군락 사이로 이어지는 북사면 길을 돌아나와 8~9분 거리에 이르면 도솔암에서 올라오는 길과 만나는 삼거리(←남산 정상, ↓도솔암 적천사 원리, 대포산 체육공원 우체국→ 푯말)에 닿는다.

여기서 10분 더 오르면 대동골 아래로 청도읍내가 조망되는 상여듬바위에 오른다. 상여듬바위를 지나 15분이면 봉수대에 닿고, 봉수대를 지난 가파른 길로 5~6분 더 오르면 거북바위 능선과 만나는 삼거리에 닿는다. 이후 한재고개~삼면봉을 경유해 정상으로 가면 된다.

• 우체국을 출발해 체육공원~봉수대능선~대포산~봉수대~한재고개~삼면봉을 경유해 정상에 오르는 거리는 약 7.5km로, 3시간 안팎이 소요된다.

우체국~적천사~봉수대능선~남산 정상


체육공원 위 밤골가든 앞 삼거리에서 왼쪽 푯말(적천사 2,310m) 방면 길로 25분 가면 고수리 공동묘지 도로확장 기념비가 있는 공터 삼거리가 있다. 삼거리에서 직진하는 오솔길은 봉수대능선으로 가는 길이다. 이 길은 이용하는 경우가 드물다.

삼거리에서 서쪽 사면길이 적천사로 가는 길이다. 8~9분 가면 공동묘지를 지나 청정지역처럼 깨끗한 오솔길로 들어선다. 이 오솔길로 20분 거리인 산죽 군락을 지나 3~4분 더 가면 월곡리에서 도솔암으로 올라오는 자동차길과 만나는 주차장에 닿는다. 주차장에서 감로수 약수를 지나 고개를 넘어가면 곧이어 왼쪽 적천사 갈림길이 있는 삼거리다.

삼거리에서 10분만 내려가면 적천사에 닿는다. 적천사는 청도읍 남쪽 원동 마을에서 올라와도 된다. 적천사에서 다시 삼거리로 올라오는 데는 15분이면 충분하다. 삼거리에서 오른쪽 오르막길로 20분 오르면 도솔암이다. 도솔암 왼쪽 급경사 사면길로 들어가 15분 오르면 체육공원에서 오르는 길과 만나는 봉수대능선 삼거리 푯말에 닿는다. 이 삼거리에서 능선길을 따라 상여듬바위~봉수대~한재고개~삼면봉을 경유해 정상으로 향하면 된다.

• 청도우체국을 출발해 체육공원~공동묘지~감로수~삼거리(적천사 왕복)~도솔암~봉수대능선~한재고개~삼면봉을 경유해 정상에 이르는 거리는 약 9km로, 4시간30분 안팎이 소요된다.

밤티재~삼면봉~남산 정상


밤티재 쉼터 동쪽에 전원 주택지 공터가 있다. 공터를 지나 약 100m 가면 길이 ㄱ자로 꺾인다. 여기서 왼쪽(북쪽) 길로 들어가 약 30m 가면 남산 남릉으로 이어진다. 남릉을 타고 15분 오르면 왼쪽 아래로 밤티재가 조망되는 노송 어우러진 전망바위로 오르게 된다. 여기서 30분 가량 더 오르면 삼면봉 삼거리에 닿는다.

※ 산행코스
• 적천사→도솔암→상여바위→봉수대→갈림길→전망대→삼면봉→남산 정상→매남봉→갈림길→톡곡고개→화양초교(적천사의 사천왕상이 도유형문화재로 지정돼 있고, 특히 절 앞의 두 그루 은행나무 고목이 일부러라도 찾아가 볼 만하다.)
• 대응사→주차장→은왕봉→795봉→삼면봉→남산 정상→매남봉→갈림길→톡곡고개→화양초교
• 밤티재→삼면봉→남산 정상→매남봉→갈림길→톡곡고개→화양초교

• 청도우체국→보현사→용화사→대포산→봉수대→삼면봉→남산→삼면봉→밤티재→화악산→윗화악산→아래화악산→철마산→초헌리 원적암안내석(18km, 약 7시간) • 밀양시 부북면 퇴로리 부북농협(퇴로버스정류장)~퇴로리 여주 이씨 고가~매화나무 과수원~임도~밀양 박씨 가족묘~401봉~(너덜)안부~돛대산(449봉)~도로(평밭마을 표지석)~전망대~옥교산 갈림길~헬기장~아래화악산(755m)~안부(한재 갈림길)~윗화악산(소화악산·837m)~비슬기맥 갈림길~운주암 갈림길~추모비(돌탑)~화악산(930m)~추모비(돌탑)~암릉(전망대)~절골~불당~중리~청도군 청도읍 평양1리 노인회관(약국) 순. 걷는 시간만 5시간30분

※ 교통정보


• 밀양터미널에서 퇴로리 가는 농어촌 시내버스는 오전 7시30분, 8시45분, 9시47분 11시45분에 있다. 1000원.

• 청도읍 평양1리 노인회관(약국) 앞 버스정류장에서 청도터미널행 버스는 오후 2시10분, 4시20분, 6시50분에 출발한다. 1800원. 청도터미널에서 청도역은 길 건너 인근에 위치해 있다. 청도역에서 부산행 무궁화호 열차는 오후 5시51분, 6시15분, 6시40분, 7시52분, 밤 9시40분에 출발한다. 1시간 걸리며 4800원(주말 5000원).

 

• 하산 후 버스 시간이 여의치 않을 경우 개인택시(011-829-5812)를 이용해도 된다. 청도역까지 1만5000원 안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