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셔온 시/모셔온 시

3월에 관한 시

철산. 케네디 2016. 2. 24. 03:10



+ 3월

흐르는 계곡 물에
귀기울이면
3월은
겨울옷을 빨래하는 여인네의
방망이질 소리로 오는 것 같다.

만발한 진달래 꽃숲에
귀기울이면
3월은
운동장에서 뛰노는 아이들의
함성으로 오는 것 같다.

새순을 움 틔우는 대지에
귀기울이면
3월은
아가의 젖 빠는 소리로
오는 것 같다.

아아, 눈부신 태양을 향해
연녹색 잎들이 손짓하는 달, 3월은
그날, 아우내 장터에서 외치던
만세 소리로 오는 것 같다.


(오세영·시인, 1942-)




+ 3월

어차피 어차피
3월은 오는구나
오고야 마는구나
2월을 이기고
추위와 가난한 마음을 이기고
넓은 마음이 돌아오는구나
돌아와 우리 앞에
풀잎과 꽃잎의 비단방석을 까는구나
새들은 우리더러
무슨 소리든 내보라 내보라고
조르는구나
시냇물 소리도 우리더러
지껄이라 그러는구나
아, 젊은 아이들은
다시 한번 새 옷을 갈아입고
새 가방을 들고
새 배지를 달고
우리 앞을 물결쳐
스쳐가겠지
그러나 3월에도
외로운 사람은 여전히 외롭고
쓸쓸한 사람은 쓸쓸하겠지
(나태주·시인, 1945-) 
  




+ 3월, 들풀처럼
    
초록의 계엄령
봄의 군단이 질주하고 있다
이제 무차별 폭격이 시작되리라

어깨동무하고 일제히
함성 내지르는 풀잎 시위대

무참히 꺾이는 한 시대의 반역자
강철 군단에도 봄은 온다

만 겹 철문 열어제치고
초록 들불 번진다
(김지헌·시인, 1956-)




+ 3월을 기다리며

내가 가장 좋아하는 계절은 봄이다
겨울 내내 움츠렸던 몸과 마음을 풀고
따뜻한 공기와 맑은 햇살을
가슴 아름 품을 수 있는 아름다운 3월

3월의 첫 날에는
창문의 겨울 커튼도 밀어내고
구석구석 쌓여있던 먼지들도 털고
창살마다 하얀 페인트를 다시 칠하리라

베란다의 그 동안 버려두었던
파랑 빨강 하얀 화분들도 깨끗이 닦고
베고니아 피튜니아 꽃도 심을 준비를 하리라
3월이면 거리에도 꽃들의 향기로 가득할 것이다
(나명욱·시인)





+ 3월에는

어디고 떠나야겠다

제주에 유채꽃 향기
늘어진 마음 흔들어 놓으면
얕은 산자락 노란 산수유
봄을 재촉이고
들녘은 이랑마다
초록 눈,
갯가에 버들개지 살이 오르는
삼월에는
어디고 나서야겠다

봄볕 성화에 견딜 수 없다.
(최영희·시인)




+ 3월

다소곳한 햇살이 눈부시다
긴 잠에서 깨어났더니
담장이 조금 낮아졌구나
귀기울이면 모두 가까이 있는 것을,
대문을 활짝 열고
주단이라도 깔아야 할 것 같은
간지러운 나날이다
(임영준·시인, 부산 출생)





+ 3월로 건너가는 길목에서

2월에서
3월로 건너가는 바람결에는
싱그러운 미나리 냄새가 풍긴다.
해외로 나간 친구의
체온이 느껴진다.
참으로
2월에서 3월로 건너가는
골목길에는
손만 대면 모든 사업이
다 이루어질 것만 같다.
동·서·남·북으로
틔어 있는 골목마다
수국색(水菊色) 공기가 술렁거리고
뜻하지 않게 반가운 친구를
다음 골목에서
만날 것만 같다.
나도 모르게 약간
걸음걸이가 빨라지는 어제 오늘.
어디서나
분홍빛 발을 아장거리며
내 앞을 걸어가는
비둘기를 만나게 된다.
ㅡ무슨 일을 하고 싶다.
ㅡ엄청나고도 착한 일을 하고 싶다.
ㅡ나만이 할 수 있는
일을 하고 싶다.
2월에서
3월로 건너가는 바람 속에는
끊임없이 종소리가 울려오고
나의 겨드랑이에 날개가 돋아난다.
희고도 큼직한 날개가 양 겨드랑이에 한 개씩 돋아난다.


(박목월·시인, 1916-1978)





+ 삼월

밖에는 지금
누가 오고 있느냐
흙먼지 자욱한 꽃샘바람
먼 산이 꿈틀거린다

나른한 햇볕 아래
선잠 깬 나무들이 기지개켜듯
하늘을 힘껏 밀어올리자
조르르 구르는 푸른 물소리
문득 귀가 맑게 트인다

누가 또 내 말 하는지
떠도는 소문처럼 바람이 불고
턱없이 가슴 뛰는 기대로
입술이 트듯 꽃망울이 부푼다

오늘은 무슨 기별 없을까
온종일 궁금한 삼월
그 미완의 화폭 위에
그리운 이름들을 써놓고
찬연한 부활을 기다려본다.
(임영조·시인, 1943-2003)





+ 3월

나의 키만큼
삼월을 보태면
삼월은 나의 키만큼
발돋움한다

삼월 속의 태양은
연두색 종이를 오리며
한뼘만한 나의 뒤뜰에
바둑돌을 퉁긴다

나는 문을 열고
나의 키만한 겨울을 집어내면
나의 이마 높이로
태양이 내려온다.
(문인귀·시인, 1939-)




+ 3월

거친 눈발이 몰아치거나
느닷없는 천둥이 치거나
폭우가 쏟아지거나 하는 것은
참을성 없는 계절의
상투적인 난폭 운전이다

3월은
은근히 다림질한 햇살이
연둣빛 새순 보듬어주고
벚나무 젖빛 눈망울
가지를 뚫고 나와
연한 살내 풍기는
부드러움이다

꽃샘추위 시샘을 부려도
서둘러 앞지르지 않고
먼 길 돌아온
도랑물 소리에 가만히
귀기울일 줄 아는
너그러움이다

3월은
가을에 떠난 사람
다시 돌아와
추웠던 이야기 녹이며
씨앗 한 줌 나누는
포근함이다


(박금숙·시인)





+ 3월    
  
아지랑이 밟으며
들로 산으로 뛰놀던 개구쟁이 녀석
때 구정물 뒤집어쓰고 코 풍선 불며
탱자나무 둔덕 잔디에 누워 깜빡 잠들고
가시에 찔려 꼼짝 못하고
탱자나무에 걸려 있는 봄볕
가시 하나 뽑아
부풀려진 풍선에 심술
지나던 하늬바람
숨어 있던 풍선 속 겨울을
북쪽으로, 북쪽으로


(김태인·시인, 1962-)





+ 3월이 오면

산으로 오르겠습니다
봄눈 질척이는 등산로 따라
이제 막 눈뜬 시냇물 소리에
가슴 헹구고
남쪽 바다 거스른 바람으론
얼굴 단장하겠습니다
옅은 새소리에 가슴 헤치면
겨울 나뭇가지 물오르는 소리.

산골 어디쯤 숨어 있는 암자 찾아
넙죽 절하고
두 손 모아 마음 접으면
선인(仙人) 사는 곳 따로 있을까
석양 등진 길손의 헤진 마음
어느 바람인들 못 헹굴까

칼바람에 웅크린 꽃잎
숨기던 화냥기 못 참아
입술 내밀어 보내는 교태에
가쁜 숨 몰아 쉬는
하늘 걸린 산
산으로 오르겠습니다.


(이길원·시인, 1944-)




+ 3월

수암사 오르는 길은
갈참나무, 병꽃나무, 오리나무가
모두 입 다물고 묵상 중이었다
가장 먼저
산수유 노랗게 허공에 떠 있었다
쉬임없이 소곤소곤 종알대고 있었으나
골짜기의 물들은 한 마디도 알아듣지 못하고
종종걸음으로 하산하고 있었다
하고 싶은 말이 많은 듯
좁은 산길 울퉁불퉁 박혀 있는 돌들이
툭툭 발목을 잡았다
줄레줄레 따라오던 잡념들은
그만 슬그머니 나를 놓아버리고,
수암사 가까이 다가갈수록
깊어지는 고요
바위에 걸터앉아 잠시 숨을 고르는 사이
비로소 맑게 빛나는
바람소리, 새소리
고요 속에서 뭉클 내가 만져지는 순간
꿩 한 마리 푸드득 날아올랐다
(홍일표·시인, 1958-)




+ 3월의 마음

꿈속에서
어딘가를 아득히 오고가다
깨어난 새벽

마시면 기침할 것 같은
솔내음

바람에 스며들어
잎새를 돋운다.

촉촉이 젖어오는 땅위를
쉬지 않고 맨발로 밟으면
이 아침에는
생각들이 넉넉해진다.

오직 사랑하므로
살아있음이여

그리움은
그립다고 생각하지 않아도
가슴속에서
저절로 우러나온다.
(이풍호·재미 시인, 충남 예산 출생)




+ 3월
  
남쪽 공단에 마이크를 들이댄다
「올봄에 계획이라도 있으면?」
「저는요 올봄에 적금 타는 게 있거든요
그것으로 아버지 경운기 사드릴래요.」
가냘픈 소녀의 목소리
얼굴을 숨겨놓은 검은 스피커 상자
그것만 봐도 눈시울이 시큰거린다
「아버지에게 경운기 사 드릴래요
농촌에선 그게 필요하거든요.」

마이크는 꺼지고
봄소식 전하는 노래가 들려온다
남쪽엔 고운 마음씨 때문에
고운 봄이 오겠다
(이생진·시인, 1929-)




+ 3월

벚나무 검은 껍질을 뚫고
갓 태어난 젖빛 꽃망울들 따뜻하다
햇살에 안겨 배냇잠 자는 모습 보면
나는 문득 대중 목욕탕이 그리워진다
뽀오얀 수증기 속에
스스럼없이 발가벗은 여자들과 한통속이 되어
서로서로 등도 밀어주고 요구르트도 나누어 마시며
볼록하거나 이미 홀쭉해진 젖가슴이거나
엉덩이거나 검은 음모에 덮여 있는
그 위대한 생산의 집들이 보고 싶다
그리고
해가 완전히 빠지기를 기다렸다가
마을 시장 구석자리에서 날마다 생선을 파는
생선 비린내보다
니코틴 내가 더 지독한 늙은 여자의
물간 생선을 떨이해 주고 싶다
나무껍질 같은 손으로 툭툭 좌판을 털면 울컥
일어나는 젖비린내 아--
어머니
어두운 마루에 허겁지겁 행상 보따리를 내려놓고
퉁퉁 불어 푸릇푸릇 핏줄이 불거진
젖을 물리시던 어머니
 
3월 구석구석마다 젖내가...... 어머니
그립다
(조은길·시인, 경남 마산 출생)





+ 3월은 말이 없고

얼음이 풀린 논둑길에
소리쟁이가 두 치나 솟아올랐다.
이런 봄
어머님은 소녀였던 내 누님을 데리고
냉이랑 꽃다지
그리고 소리쟁이를 캐며
봄 이야기를 하셨다.

논갈이의 물이 오른 이웃집
건아 애비는
산골 물소리보다도 더 맑은 음성으로
메나리를 부르고
산수유가 꽃잎 여는 양지 자락엔
산꿩이
3월을 줍고 있었다.

흰 연기를 뿜어 울리며 방금
서울행 기차가 지나가고
대문 앞에서 서성이며
도시에서 올 편지를 기다리는
정순이의 마음은
3월 아지랑이처럼 타고 있었다.

이 3월이
두고온 고향에도
찾아왔을까
천 년 잠이 드신 어머님의 뜰에도
이제 곧 고향 3월을
뜸북새가 울겠구나.

고향을 잃어버리면
봄도 잊고 마느니
우리들 마음의 봄을 더 잃기 전
고향 3월로 돌아가리라.
고향의 봄은 나를 기다리고 있다

(황금찬·시인, 19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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