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솜씨/수 필

나는 섬마을에 산다 

철산. 케네디 2018. 5. 6. 13:14


            나는 섬마을에 산다


                                                             산에서 본 섬 마을

 

나는 물속 아닌 도시 속의 섬마을에 살고 있다.

내가 사는 섬마을은 행정구역상 동 이름이 도촌동(島村洞)이고 마을 이름이 섬마을이다. 그 말이나 그 이름이 똑같다. 주소가 성남시 중원구 도촌동 섬마을이다.

도촌동은 성남시와 광주시의 경계를 이루는 남한산성에서 용인 방향으로 산맥이 이어져 있다. 국도 경충선 성남 모란 고개를 넘자마자 우측산등성이 넘어, 꼭대기 층만 살짝 보이는 아파트단지가 섬마을이다. 요즈음 새로 생긴 경충선 자동차전용도로 성남시청 인근 지하도를 지나 서 1km 정도 지나면서 우측 아파트단지가 도촌동이다.

예사롭지 않은 동네 이름의 유래도 재미있다

 

도촌동 위성사진


누구나 역사에서 배움 직한 이괄(李适)의 난()과 깊은 연관이 있는 것 같다.

고성이씨(固城李氏) 선조 중에 이원(李原)이라는 분의 묘를 도촌동 용머리에 모신 후에 계속 양반가에 이름을 떨쳤는데, 인조반정 당시에 일등공신에 책록(冊錄)되었어야 할 이괄(李适) 이 이등공신으로 책록(功臣冊錄)에 불만을 가지고 반란을 일으켜, 북장 연변에서 쳐들어오자 왕과 대신들은 서울을 떠나 공주로 피난하였다. 1624211일 이괄 군은 마침내 서울에 입성, 경복궁의 차지하였다. 지방에서 반란을 일으켜 서울을 점령한 것은 우리 역사상 처음 있는 일이었다. 그러나 215일 밤 이천의 묵방리(墨坊里)에 이르렀을 때, 부하 장수들의 배반으로 이괄과 한명련 등은 장만과 정충신에게 패퇴(敗退)하여 잡혀 죽었다. 결국 이괄(李适)의 오대조(五代 祖)인 태종(太宗) 때에 의정부 좌의정을 지낸 이원(李原)의 도촌동에 있는 묘소(墓所)를 비롯하여 고조, 증조와 할아버지와 아버지의 묘가 파 해쳐 부관참시(剖棺斬屍)를 당하고 마을 주변 곳곳에 보초(步哨)를 세우고 사람들이 접근(接近)을 못 하게 하여, 사람들이 함부로 들어갈 수 없는 곳이라고 하여 섬마을로 불렸다는 설화(說話)가 있는 마을이다. 다른 주장은 마을 양쪽으로 시내가 있어 풍수상(風水 上)으로 섬처럼 생겼다고 해서 섬마을이라고 불려왔다고도 하고. 1925년 대홍수 때 온 마을이 물에 잠기고, 마을 앞동산이 섬 모양 같았다는 설 등등.

실제 지형이 물이 아닌 산으로 겹겹이 둘러싸인 섬마을이다.

동쪽으로는 경기도 광주시와 산으로 겹겹이 싸여있고, 남쪽은 야탑동 경계산과 맹산과 겹겹이, 북쪽으로는 갈현동 경계 산과 하대원산이 겹겹이, 마을 입구 서북쪽은 낙타봉과 하대원산 끝자락이 완벽하게 2중으로 둘러싸인 산속의 섬마을이다. 성남 시내보다 평균 온도 2~3도 차이가 나는 청정지역이다.

법정 동명의 유래는.

1914년 대한제국의 행정구역 개편 때에 광주군 돌마면 도촌리(島村里)가 되었고, 197371일 성남시 되면서 도촌동이 되었다. 1989년 성남시 중원구(中院區)에 편입되어 현재에 이르고 있다.

섬마을 아파트는 9개 단지로 이루어져 있다. 10~3년 전까지 순차적으로 건설되어 입주한 약 8천 세대가 들어선 마을이다. 개인 주택 건설이 예상되는 6단지만 대지로 남아 있다.

10년 전 이사를 오기 전에도 지금 내가 사는 아파트 단지 이 터에 아는 사람이 비닐하우스 농장을 하고 있어서, 한두 번 들려 채소를 얻어 먹은 적이 있다. 그때는 내가 살게 될 곳이란 예상도 못 했고, 하필 그 사람의 터에 세운 아파트에 내가 살줄은……. 연고와 인연은 묘하다는 생각을 떨칠 수가 없다.

어떻거나 아파트 10층에 살면서 여름이면 밤꽃 냄새를 맡을 정도로 산 중턱과 창문이 닿아 있다. 평생을 대부분을 산 밑에 살았다. 어릴 때 두메산골. 서대문 영천 인왕산, 성남 남한산성. 과천 청계산. 지금은 동산과 코를 맞대고 산다.


섬마을에 사는 것도 행운이며 건강을 위하여 열심히 움직이면서 살아간다.

내가 사는 동네 입구에서 안쪽의 9단지에 있는 비상용 지하 암반수를 뜨려 간다.

일행(一行) 삼득(三得)을 실천하기 위해서다. 수질이 지하 150m의 암반수로서 최상급 음료수다

  

一得은 검사항목 중에 일반세균, 대장균 등은 다 영(0) 또는 불검출이고, 질산성 질소만 기준 10mg/L 이하 에 2.2, 과망가니즈산 칼륨 소비량이 0.6이 검출되는 최고의 음료수를 먹기 위해서다.

내가 이사 온 10년을 길러와 보관해도 물통에 앙금이 없을 정도다. 그물을 먹었던 사람은 부천 또는 수원으로 이사 간 사람이, 밤중에 몰래 20물통을 5~10개 식 가지고 와서 길러갈 정도로 물맛이 좋다.


二得은 왕복 5000보 하루의 기본적인 운동을 위해서다.

우리 집에서 주택단지를 지나. 3단지. 4단지. 5단지. 7단지를 지나는 약 2km의 개천 길은 산책길이다. 기도원 뒷산에 이 지하수 길옆으로 이어지는 실개천(島村川)2Km를 흘러, 여수 천을 만나 다시 2.5km를 유유히 흘러 탄천으로 이어진다.

도촌 천은 동네 입구에서 이어지는 폭 15m. 양쪽 길에서 깊이 1~3m 정도의 실개천이다.

개천 따라 양쪽에 만들어진 인도는 앙증맞게 시골 고샅길 냄새도 풍기는 정다운 길이다.

가로등이 있어 밤에도 운동이 부족하다 싶은 날은 시간과 관계없이 물통을 들고 나선다.

三 得은 우리 집에서 키우는 두 살배기 견공 깜돌이(슈나우저 종)를 동반 산책길이다.

항상 밖에 나가기를 애원하는 깜 돌이다 개천 길을 걸으면 신이 나서 나를 이끌다시피 앞장을 선다. 깡충깡충 뛰는 가하면 예민한 코를 길거리와 길섶을 샅샅이 점검하면서 적당한 곳은 영역표시로 오줌을 질금 갈기고는 코를 박고 간다.

봄이면 개천가 알루미늄 펜스를 뒤덮은 개나리와 4월 말과 5월에는 철쭉과 영산홍. 조 팝 꽃이 너무나 아름다워 삼천리 금수강산이 봄이면 꽃으로, 여름이면 울창한 숲으로, 가을이면 5색의 단풍으로, 겨울이면 시집가는 누님이 눈 덮인 면사포를 쓴 나무들이 즐비한 아름다운 금수강산으로 변한다.

나는 요즈음, 이 아름다운 삼천리 금수강산이 우리가 이룩한 세계가 부러워하는 이 땅에 태어났음에 한없는 긍지를 가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