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 먼저 와서 / 류인서
횡단보도 신호들이 파란불로 바뀔 동안
도둑고양이 한 마리 어슬렁어슬렁 도로를 질러갈 동안
나 잠시 한 눈 팔 동안
꽃 먼저 피고 말았다
쥐똥나무 울타리에는 개나리꽃이
탱자나무에는 살구꽃이
민들레 톱니진 잎 겨드랑이에는 오랑캐꽃이
하얗게 붉게 샛노랗게, 뒤죽박죽 앞뒤 없이 꽃피고 말았다
이 환한 봄날
세상천지 난만하게
꽃들이 먼저 와서, 피고 말았다
류인서 시인
인서 시인은 2001년 『시와 시학』 신인상으로 등단하였으며 육사시문학상 젊은시인상, 청마문학상 신인상, 대구시인협회상을 받았다. 시집으로는 『그는 늘 왼쪽에 앉는다』(창작과비평. 2005), 『여우』(문학동네. 2009), 『신호대기』(문학과지성. 2013) 등이 있다.
황희진 기자 hhj@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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