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 게으름뱅이 나무
김종길
평생 한 발짝도 못 걷는 나무
서서만 있는 게으름뱅이
그래도
천하를 호령하는 왕인가 봐
봄 오면 잎새 꽃잎 피게 하고
향기 뿜어 벌 나비 불러
화접(花跕) 씨방 맺게 한다
여름햇빛 그늘 나리고
매미들 노래시켜
가는 길손 즐겁게 한다
가을에 다람쥐 유혹하여
숨긴 열매 겨울양식이
새끼왕자 싹도 틔운다
옷 벗은 겨울 오들오들 떨다
나이테 하나 더 두르고
얼어붙은 우듬지에 물 올린다
한 발도 못 걷는 키 큰 나무
서만 있는 그 자리에서
명령만 하는 왕 게이름뱅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