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솜씨/수 필

성남에 살어리랏다(5)

철산. 케네디 2015. 3. 11. 00:30

 

                  성남에 살어리랏다(5)

                              -성남에 살아 온 보람-                

                                           鐵山   김종길

 

 

19899월초 을지연습(CPX :Command Post Exercise)평가관으로 대전직할시에 출장을 갔었다.

기관을 대표한 공식출장임으로 시장님을 예방하는 것은 당연한 관례였다.

아 이거 얼마만입니까?”

김 회장님 정말 반갑습니다.”

10여년 만에 만나니 감격스러운 포옹이었다.

 

대전직할시 승격 초대 이봉학 시장실에서 ‘80년도 성남시장 재직시절 만나고 그 후 서로의 동정은 알고 있었지만 만남은 처음이었으니 반가울 수밖에 없었다.

성남시장으로 재임 1년여 간에 많은 추억과 인연이 있었기에 진심으로 반가워하였고 나 또한 즐거운 출장이 되었다. 시장님은 출장자 명단에서 내가 오는 것을 알고 있었으므로 그날은 다른 일정을 미루고 나에게 초점이 맞춰져 있었던 것 같았다. 오찬도 특별한 배려로 시장이 주관 하에 모든 국장과 관계과장까지 참석한 자리가 마련되어 있었다. 그 자리에서 성남시장 재임시절에 내가 활동하며 도와준 사례를 들어가며 점심시간 내내 나의 이야기였다. 1980년도 이 시장이 성남시장임명은 지방단체장으로 처음 부임한데다 성남이란 특수성으로 어려움이 많았는데, 중앙공무원들의 적극적이고 진심어린 지원과 봉사활동 등 사례를 들어 설명하였다. 내용에 과장은 없었지만 내가 민망할 정도였고, 모든 공무원의 귀감이라며 진심어린 칭찬을 받아 그간 봉사한 보람과 공무원의 자긍심을 돋워 주었다.

 

이봉학 성남시장이 재임할 때가 우리공무원회 활동이 가장 활발할 때였다.

그분은 부임 후 2개월이 지난 5월 말에 중앙부처 근무하는 우리회원 120여명 전원을 성남시청으로 초대하였다. 성남시청 대회의실에서 성남시 현황과 당면과제를 브리핑 하면서 성남시를 위하여 노력하는 우리들 전 회원에게 명예시장으로 위촉한다는 덕담을 할 정도로 좋은 분위기였다.

그 분은 내 직장의 직속상관인 정 모국장과 장차관 비서관모임에 같은 회원 이였다. 정 국장은 그분이 시장발령을 받자, 나의 봉사활동을 잘 알고 있었기에 이 시장이 부임하기도 전에 입에 침이 마르도록 사실을 이야기 한 것 같았다. 정 국장은 나에게는 부임할 이 시장에 대한 많은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나도 이시장도 만나기도 전에 각별한 관심과 업무수행에 큰 도움이 되리라는 것을 예견하고 있었다. 이사장은 우리회원들이 청와대를 비롯하여 감사원, 내무부에서부터 전 부처에 근무하는 중앙공무원들로 구성되어 있고, 활발한 봉사활동을 들은바 있으니 심정적으로나 현실적으로 큰 도움이 될 수 있음을 알고 있었다. 부임하고 바쁜 일정임에도 아침산책을 제안해 왔기에 5월초 순에 중앙동과 하대원에 걸쳐 있는 동산을 거닐며 산책을 하였다. 우리회가 문화원설립에 도서 4500여권을 기증하였고 영사기를 대여하는 등 적극적으로 지원하고 있음을 설명하였다. 그리고 문화원설립을 준비 중인 조 모 씨에 대하여는, 도시기반이 열악한 성남시에서 현실적으로 원주민이고 애향심과 재정적인 능력, 준비과정의 순수성이 돋보인다고 조언을 했었다. 그래서 지지부진한 문화원이 설립이 가능한 조기에 될 수 있도록 추천해 줄 것을 건의하였고 시장님도 흔쾌히 약속하였다. 그리고 문화원 설립신청서가 성남시와 경기도를 거처 문화공보부에 접수되었다. 그런 얼마 후에 문화공보부에 근무하는 우리 회 윤복호 부회장이 허가가 불가능 할 것 같다는 연락을 받았다. 당시 나는 문화공보부 인근 중앙청에 근무할 때라, 문공부 문화과의 김 모 과장을 찾아갔었다. 내가 찾아 온 이유와 문화원과의 관계 등을 설명하고 허가해 주기를 간곡히 부탁하였으나 부정적인 반응이었다. 그 다음날 우리 공무원회가 문화원에 영사기 대여와 도서 등을 지원한 사실이 수록된 우리 회 회보(會報)와 내가 밤새워 작성한, 우리회가 문화원 운영에 적극적으로 지원하겠다는 간곡한 설립허가 진정서를 읽어보라고 김 과장에게 주고 왔었다. 다음날 전화로 성남공무원회의 활동을 높이 평가하면서, 공무원회의 지원을 믿고 설립허가를 해주기로 약속하였다. 이봉학시장이 부임한 후 나와 합심으로 처음 성남시를 위한 문화원설립허가(1980930일 문공 제341)를 받았고 개원 날 우리 회는 감사패를 받았다.

그분이 재임기간 중에 우리 집에서 특별 반상회활동을 촬영하는 국립영화제작소의 대한뉴스팀의 촬영에도 참석하였다. 그해 가을 성남시 청사 개청 후 처음으로 우리회의 남녀 회원 간 결혼식을 이 시장의 특별한 배려로 시청대회의실에서 거행하였다. 이러한 상호 적극적인 협력과 지원으로 우리 회는 성남시를 위한 봉사활동과 새마을운동, 자연보호활동에 적극적인 지원과 성남시를 비롯한 관변단체의 각종 행사와 홍보활동에 국립영화제작소의 홍보영상필름 등 지원을 아끼지 않았다.

중앙부처 공무원들이 지방자치단체를 적극적으로 협력하는 일은 전국적으로 찾아 볼 수 없는 특별한 인연이 있었다. 그 후 10년지나 이봉학 초대 대전직할시장으로 부임한 첫해에 을지연습평가관으로 내가 공식적으로 방문한 것이다. 사전에 출장자 명단을 보고받고 특별히 배려한 것 같았다. 그날 오찬장에서 대전시 고위공무원 들 앞에서 나의 칭송과 오후에는 대전시 각급 기관장과 산하 구청장 및 관변단체장이 모인 을지연습평가장에서 또 한 번의 나의 봉사활동을 극찬을 해 주었다. 내가 성남시에 살아온 보람과 공직자로서의 자긍심을 먼 대전직할시 공식석상에서 알려지는 계기가 되었다.

 

봉사활동의 시작은 열악한 환경에서 성남시에 산다는 사실만으로 주위의 멸시와 천시를 극복하기 위하여 성남에 사는 공무원들이 의기투합하여 젊은 열정을 쏟아 살기 좋은 성남을 만들겠다는 자생적이고 적극적인 봉사활동이었다.

그 것이 중앙부처 공무원들이 지방자치단체를 적극적으로 지원한 모범사례가 되었고 성남시 40년시사(市史)에 기록(10219)에도 남기게 되었다.   

 

1980년 총회 후 기념촬영

 

 

          

城南市 40年史(2015년4월) 10권 219면 게재내용                         

                         

                               

                                                  1980년11월 문화원 개원식  이봉학 시장(우측첫번째)

 

 

 

 

성남에 살아 리랏다(5).hw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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