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솜씨/수 필

나의 고향

철산. 케네디 2012. 3. 16. 23:46

                                                                                    나의 고향                                                                                                          김 종 길  

 

  고향 뒤 철마산은 약 600m 높이에 경상남도와 경상북도의 경계를 이루는 경사가 급한 험한 산이다. 그 산의 남쪽 양지바른 끝자락에 80여호가 옹기종기 모여 사는 고향 동네를 품고 있었다. 동네는 늦게 해가 뜨고 일찍이 해가지는 산속에 숨어있는 두메산골이다.      

                  

  

   동남쪽으로 1km 거리에 경부선 철로가 지나고 있었다. 예전에는 아름다운 강과 산자락을 따라 뱀처럼 굽이치며 철길이 이어젔다. 청도와 밀양역을 잇는 중간 고향 마을 입구 강가에 만남의 환희와 헤어짐의 아픔이 베어있는 정든 고향 유천역이 있었다. 밤이면 증기기관차의 기적소리와 육중한 기차바퀴의 리드미컬한 소리가 산과 산 사이 좁은 마을 입구를 비집고 들려왔다. 어린 시절 기적소리와 기차바퀴 소리에 자주 잠을 깨곤 했다. 추억으로만 남은 그 기적소리가 지금은 그립기만 하다. 

 

 

이터넷에서 가져온 사진

 

  

어린시절 유천역이 상동역으로 이름이 바뀌었다. 철길도 산과 강을 가로 질려 직선으로 변하였다. 서울에서 열시간이나 걸리던 고향길이이제는  KTX가 2시간 정도면 고향에 갈 수 있게 되었다. 가슴 설레이며 기나긴 시간 기차 타고 고향 가던 향수도 세월과 더불어 없어졌다 

 

나는 할아버지를 일찍 여왼 할머님과 20대 초반의 부모님의 장남으로 태어났다. 동생이 다섯 명이나 더 태어날 가정에서 내가 제일 먼저 세상구경을 한 것이다. 심심산골 가난한 농가에 태어났으니 장남인 나의 어깨는 이미 무거운 짐을 진 것이나 다름없었다.

더구나 일본의 대동아전쟁으로 우리 국민을 무자비하게 수탈하던 시기에 태어났으니 참으로 어려울 때였다. 다행이 일본 말이 국어인줄 알고 배우던 초등학교 1학년 때 해방이 되었다. 그 후 6. 25사변, 5. 16혁명, 민주화 혼란, 산업화로 선진국 진입 등 모든 수난과 고비의 소용돌이 한 가운데 우리세대가 있었다. 우리세대에게 가시 밭길 같은 험난한 앞날은 이미 태어날 때부터 운명적으로 예정된 샘이다.

 

그러나 내 고향은 고해와 같은 인생살이를 견디게 해주었다.

고향의 우둑 솟은 뒷산처럼 나를 버티게 했고 사시사철 변화하는 자연의 순리가 나의 험난한 인생의 고비마다 손을 잡고 넘어가게 해주었다.

나의 고향은 사방이 산으로 둘러 싸여 천혜의 맑은 공기와 아무리 마셔도 배탈나지 않는 맑은 시냇물이 언제나 흘러내렸다. 아침마다 까치와 참새, 이름 모를 수많은 새들이 지저귐에 잠을 깨곤했다. 그 소리는 어떤 합창단의 노래보다 아름답고 감동이라 내 마음의 깊은 샘물이 되었다. 사방을 둘러싼 사천초목과 논두렁 밭두렁에 이름 모를 꽃들이 앞 다투어 피는 아름다운 두메산골이었다.

 

봄이면 산기슭마다 발갛게 물든 진달래가 수 놓았고 산자락과 들녘마다 피어나는 복숭아 꽃 벗 꽃 들은 축제의 장이었다. 고향의 산은 공원이고 들은 화원이라 나에게 아름다운 꿈을 꾸게 한 무대였다.

여름이면 산과 들은 푸른 초목으로 바다를 이루었다.  폭풍우 비바람에 산천조목이 파도를 치면 싱그러운 냄새가 고향산골을 가득 채웠다. 맑은날 갑작스런 천둥번개와 폭풍우 뒤 초목의 무성함함은 험난한 세상사에 자연에 순응하는 깨달음을 주었다.

가을이면 온 동네는 감으로 뒤덮이고, 들에는 오곡이 황금물결을 이루었다. 산자락마다 탐스럽게 입 벌린 밤송이, 뒷산 머루 다래는 비로소 보릿고개를 잊고 정말 신나게 뛰놀 수 있는 행복하고 살맛나는 풍성한 시절이었다.

 

 이터넷에서 가져온 사진

  

겨울이면 앙상한 나뭇가지와 소나무의 솔잎 사이로 지나가는 칼바람 소리가 왜 산골을 더욱 춥게 만들었다. 하지만 그 모진 추위에도 동네 앞 개울가  얼음판에 내가 만든 설매로 꽁꽁 언 손을 호호 불며 타는 즐거움을 지금도 잊을 수가 없다. 겨울은 가난한 농가의 육형제의 장남으로 태어난 숙명과 최빈국에서 선진국으로  도약하면서 운명적인 고난의 고비마다 나를 견디게 한 힘과 환희의 봄을 기다리는 인내심을 길러주었다.   

 

황사도 매연도 없는 푸른 하늘에 해는 빛나 눈이 부셨다, 밤하늘에 별은 까만 융단에 보석을 뿌린 듯 온천지가

빤짝이며 빛났다. 달은 나뭇가지에 결여 서산을 넘지 못해 더욱 밝았다.  

고향의 산골마다 내 발끝 닫지 않는 곳이 없고, 농사일에 내 땀 묻지 않는 들녁이 없다.

산과 들에서 피고 지는 모든 것들이 내 몸의 먹새요 내가 풍기는 냄새는 내 고향의 향기다.

 아름다운 꽃들과 새소리는 내 영혼의 교향곡이고 마음의 샘물이 되었다.

그 곳이 내고향이요 삶의 순리를 가르쳐 준 서당이요 학교였다.

 

내게 영원한 마음의 쉼터인 고향이 있어 행복하다. 

고향이 없는 사람들에게 내 고향 자연의 아름다움과 포근한 마음의 쉼터를 나눌 수 있으면 얼마나 좋으가?

 

 

 

                                                                      성남문학   제36집 (2012년)  460면 게재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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