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셔온 시/모셔온 시

굴비

철산. 케네디 2016. 8. 15. 03:14





굴비 / 오탁번의 詩

 

 

수수밭 김매던 계집이 솔개그늘에서 쉬고 있는데
마침 굴비 장수가 지나갔다

굴비 사려,

굴비! 아주머니, 굴비 사요.

사고 싶어도 돈이 없어요
메기수염을 한 굴비장수는
뙤약볕 들녘을 휘둘러보았다  

 

그거한 번 하면 한 마리 주겠소

가난한 계집은 잠시 생각에 잠겼다  

 

품 팔러 간 사내의 얼굴이 떠올랐다
저녁 밥상에 굴비 한 마리가 올랐다  

 

웬 굴비여?
계집은 수수밭고랑에서 굴비잡은 이야기를 했다

사내는 굴비를 맛있게 먹고 나서 말했다 
앞으로 절대 하지 마!  

 

수수밭 이랑에는 수수이삭 아직 패지도 않았지만
소쩍새가 목이 쉬는 새벽녘까지

사내와 계집은
풍년을 기원하며 수수방아를 찧었다 

 며칠 후 굴비장수가 다시 마을에 나타났다
그날 저녁 밥상에 굴비 한 마리가 또 올랐다


또 웬 굴비여?
계집이 굴비를 발라주며 말했다
앞으로는 안 했어요

​사내는 계집을 끌어안고 목이 메었다
개똥벌레들이 밤새도록


사랑의 등 깜박이며 날아다니고

베짱이들도 밤이슬 마시며 노래를 불렀다. 





'모셔온 시 > 모셔온 시' 카테고리의 다른 글

 올해 100세의 시바타 도요 詩  (0) 2017.05.15
깃발  (0) 2016.08.15
자취방  (0) 2016.05.09
어머니의 한평생 餘恨歌  (0) 2016.04.27
시 모음  (0) 2016.02.2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