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셔온 시/모셔온 시

차 한 잔/ 길상호

철산. 케네디 2020. 4. 9. 21:16

차 한 잔/ 길상호

 

묵언(默言)의 방 수종사 차방에 앉아서

소리 없이 남한강 북한강의 결합을 바라보는 일,

차통(茶桶)에서 마른 찻잎 덜어낼 때

귓밥처럼 쌓여 있던 잡음도 지워가는 일,

너무 뜨겁지도 않게 너무 차갑지도 않게

숙우(熟盂)에서 마음 식혀내는 일,

빗소리와 그 사이 떠돌던 풍경소리도

다관(茶罐)안에서 은은하게 우려내는 일,

 

차를 따르며 졸졸 물소리

마음의 먼지도 씻어내는 일,

깨끗하게 씻길 때까지 몇 번이고

찻물 어두운 내장 속에 흘려보내는 일,

 

퇴수기(退水器)에 찻잔을 헹구 듯

입술의 헛된 말도 남은 찻물에 소독하고

다시 한 번 먼 강 바라보는 일,

나는 오늘 수종사에 앉아

침묵을 배운다

 

   

    

 

 

시인 길상호

 

1973년 충남 논산에서 출생하여 한남대학교 국어국문학과를 졸업했다,

2001한국일보신춘문예에 그 노인이 지은 집이 당선되어 등단,

2004'현대시동인상'을 수상했다. 시집으로 '오동나무 안에 잠들다 (문학세계사)'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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