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솜씨/수 필

풍물놀이

철산. 케네디 2013. 2. 25. 01:30

                                                    풍 물 놀 이

                                                             김종길 

 

 

지난 일요일에는 임진년 성남시대보름민속축제에 풍물패로 참가하여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풍물놀이는 우리나라 고유의 민속놀이 중에 가장 열정적이고 생동감이 넘치는 흥겨운 놀이이다. 풍물은 꽹과리, 징, 북, 장구등 기본적으로 사물과 네 명이상으로 구성되는 화음의 합동놀이다. 사물이외 나팔, 태평소, 소고 등을 추가로 사용하기도 한다. 풍물놀이는 놀이의 목적과 참가자 수, 악기를 다루는 능력에 따라 다양한 형태가 있고 전문적인 놀이패는 문화제로 지정되기도 한다. 풍물소리의 조화는 남녀노소 누구나 어깨를 덩실거리게 하는 신나고 흥겨운 단체놀이이다.

 

풍물놀이는 상고(上古)시대부터 군악(軍樂)과 민속신앙 및 농악에서 유래되어 전국 방방곡곡 서민들의 놀이가 된 것으로 추정된다.

풍물놀이의 영기(令旗) 와 상모의 모자인 전립(戰笠) 및 포수의 등장과 놀이 중에 오방진(五方陳), 원진, 방울진 등은 군악과 깊은 관계가 있다.

그리고 풍물놀이 중에 당굿, 지신밟기와 고깔모자, 빨강. 노랑. 파란 삼색 띠를 보면 민속신앙과도 깊은 관련이 있음을 알 수 있다. 우리민족의 오랜 농경사회의 일에 지친 몸을 신명으로 풀어내는 대표적인 농악으로 자리매김하였다. 풍물놀이의 유래가 어떠하든 지역에 따라 형태는 조금씩 다르지만 모심기, 추수, 설 명절, 결혼잔치 및 학교운동회 등에도 어김없이 흥을 돋우는 놀이가 되었다. 이번 대통령 취임식 식전행사에도 제일먼저 풍물놀이가 흥을 돋울 정도로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민속놀이다.

 

노인종합복지관에서 풍물을 배운지 2년이 넘었다. 풍물놀이의 필수품인 사물 중에 장구와 북은 어느 정도 칠 줄 알게 되었다. 풍물놀이 그 자체가 타악기인데다 화음과 조화가 중요하므로 옛 시골에서 해본 경험이 있어 듣기 싫지 않을 정도로 조화를 이룰 수 있어 즐겁다. 복지관 풍물놀이 선생님이 지도하는 노인복지관과 양지동, 수진동 풍물패 등 20여명이 성남시 대보름민속축제에 참가하였다. 그리고 성남시내 여러 곳에서 온 80여명의 풍물패와 함께 한바탕 흥겨운 놀이마당을 펼쳤다. 축제에 참가한 약 5~6백 명 시민들의 어깨를 들썩이기에 충분하였다. 특히 풍물패 중에 초등학교 2학년 정도 된 어린이가 풍물 중 가장 어려운 꽹과리를 치는 상쇄놀이는 박수 받을 충분한 재능과 소질을 가지고 있어 모두를 감동시켰다.

 

탄천 둔치의 축제 장소에는 각종 연 50여개가 이어진 연날리기, 널뛰기 제기차기, 딱지치기 등 20여 가지의 민속놀이 체험 장이 마련되었다. 어린이를 동반한 젊은 아주머니들이 많이 온 것이 인상적이었다. 행사장인 탄천 둔치축구장이 올 여름장마에 피해를 입어 예정되었던 사자놀이 등이 일부민속놀이가 생략되어 아쉬움이 있었다. 달집을 태우는 마지막 행사에 하늘을 치솟으며 타오르는 달집 주변을 원을 그리며 도는 풍물놀이와 시민들이 어울려 춤을 추는 흥겨운 한바탕 놀이로 민속축제행사는 끝이 났다.

 

우리 풍물패는 복지관 자체 대보름축제 개막행사에도 풍물놀이로 시작되었다. 그리고 복지관과 주변 가게를 돌며 신나는 지신밟기를 하였다. 마지막 축제행사 뒤풀이도 풍물패와 회원들, 주민들이 어울려 신바람 나는 한바탕 잔치를 벌였다. 무엇보다 풍물을 배워 풍물놀이에 어울릴 수 있을 정도로 칠 수 있게 된 것이 신나고 즐겁다.

 

옛 시골에서는 가르치거나 배운 적도 없이 풍물놀이가 가능했던 것은 우리 민족의 흥겨운 놀이에 천재적 소질과 예술성을 타고 났지 않았나 생각된다.

 

어린 시절 시골에서 정초부터 대보름이 지날 때까지 온 동내 남녀노소가 어울려 집집마다 돌아가면서 지신밟기를 하는 것이 연례 행사였다. 어울릴 수 없는 처녀들은 자기가 좋아하는 총각이 신명나게 노는 것을 담 넘어 엿 보고 더 흠모하며 애를 태우는 시절이기도 하였다. 연일 계속된 흥겨운 풍물놀이에 팔을 들 수 없을 정도로 몸살을 앓았던 기억이 새롭다. 정초와 추석명절, 당산 굿, 단오, 백중 등 명절에는 물론 동내 결혼, 회갑 등 대소사에 어김없이 남녀노소와 모든 동민이 고된 농사일에 시럼을 잊고 어깨를 들 섞이게 한 것이 풍물놀이였다.

 

풍물놀이의 본고장인 농촌은 젊은이의 출향으로 첨차 쇠퇴해 가는 것이 안타깝다. 그러나 산업화되고 도시화 되었지만 탄천 둔치에서 풍물놀이와 연을 날리고 재기를 차는 등 우리의 민속놀이를 계속할 수 있어 그나마 다행이었다.

 

오늘날 김덕수 사물놀이패, 난타, K-POP, 강남스타일 등이 전 세계 한류를 이루는 것은 풍물놀이와 무관하지 않을 것이다.세게 유명 예술제에 대상을 차지하는 신세대의 예술성도 우리민족이 멋과 풍류를 아는 예술적인 소질에서 비롯되었을 것이다. 

21세기는 풍류를 알고 문화를 지배하는 나라가 세계를 지배할 것이 분명하기에 우리가 세계문화를 지배할 날이 멀지 않았음을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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