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솜씨/수 필

의미있는 여행

철산. 케네디 2013. 4. 7. 01:45

 

                                                  의미 있는 여행

 

 

일박이일 여행을 다녀왔다. 복지관 주관으로 이용자 대표자들이 강릉으로 캠프를 갔다. 해마다 프로그램이용자 반장들과 관련자들이 봄에 여행을 가는 것이 관례로 되어 있다. 여행은 가는 목적, 동행자의 친숙도, 숙소의 환경, 교통의 편리성, 먹 꺼리가 좋으면 즐거운 여행이 될 수 있다.

 

 

 

이번 여행의 목적은 이용자대표자회의 몇 가지 안건의 심의와 대표자들 간의 친목도모 등 복합적인 목적으로 갔다. 관광버스 두 대가 동원되었다. 노령의 어른들을 모시는 단체여행이라 사고에 대비하는 많은 배려가 엿보여 즐거운 여행이 되였다. 자연산 산채비빔밥, 물회정식, 초당순두부 등 먹거리도 맛깔나서 좋았다. 여행지의 오가면서 소요되는 지루한 시간은 같이 앉은 사람의 친숙도가 여행의 즐거움을 좌우한다. 다행히 이번 평소에 마음이 통하고 부담 없이 농담을 주고받는 동료가 앉아서 즐거운 여행이 되었다.

 

 

첫 여행지 오대산 천연고찰 월정사를 둘러보고 강릉 옥계에 바닷가에 연해있는 한국여성연수원에 숙소에 도착했다. 숙소는 연초면 해맞이를 위해 교통이 마비될 정도인 정동진 인근이었다. 오대양 육대주와 숙소가 맞닿아 있는 넓은 바다는 심신을 이완시키는 힘과 파도소리에 마음을 치유한다는 해양요법( 테라소 테라피)의 최적지인 것 같았다. 특히 숙소주변에 수십 년 된 소나무는 사진작가가 아닌 나도 티카를 꺼낼 정도로 운치가 있었다. 저녁에는 여행의 주목적인 이용자대표 임시총회가 있었다. 그리고 친목행사인 ’화합의 시간‘이 연수원 5층 라운지에서 벌어졌다. 모처럼 여행에서 뜻이 맞는 사람끼리 숙소를 살짝 벗어나 생선회에 소주한잔을 걸쳤더니 여행의 기분이 남달랐다. 다음 날 아침 해돋이는 무디고 둔한 나의 정서를 용솟음치게 하였다. 바닷물에 꼬리를 달고 떠오르는 찬란한 해의 눈부신 서광과 희망차게 치솟는 해는 신비로움을 일깨워 주었다. 찬란한 아침 해돋이의 신비를 안고 다음 여행지인 강릉통일공원을 둘러보았다.

 

 

 

통일공원이 조성된 곳은 산과 바다의 조화가 신비할 정도로 아름다운 곳에 분단민족의 아픔을 고스란히 품고 있었다. 6. 25전쟁 당일새벽 북한군 1600명이 처음 침투하여 상육한 곳이었다. 또한 강릉은 육이오 당시 우리 공군전투기가 총 8,459회의 출격 중 7,825회를 강릉에서 수행했으며 평양 대폭격 등 주요작전을 단독수행한 곳이기도 하였다.

특히 1996년 9월 18일 모든 국민을 경악케 한 무장간첩 26명을 태운 북한잠수정이 침투한 곳이었다. 325톤급 잠수함의 내부를 들어가 보니 그 많은 간첩이 어떻게 승선하였는지 궁금할 정도로 비좁았다.

 

 

 

또한 바로 옆에 2009년 굶주림에 시달리다 탈 북한 어민가족 11명이 타고 온 목조어선도 전시되어 있었다. 역사적으로는 이곳은 고려시대의 방어진지인 '고려성'이 해안 중턱에 자리 잡고 있어 예부터 국방의 요지임을 알 수 있는 곳이었다.

 

특히 공원 내에는 미국이 1945년 1월부터 1972년까지, 제2차 세계대전과 한국전쟁 및 베트남전쟁에 참가했던 미 해군이 사용하다 전시된 3,471톤급 구축함은 우리의 현대사를 되돌아보게 하였다.

이 구축함을 1972년에 우리 해군이 인수 받아 “전북함”으로 명명하여 사용하다 1999년에 12월에 퇴역하였고 2000년 5월부터 이곳에 전시되고 있다고 했다. 이 거대한 함정의 내부를 구석구석 둘러보는데 함포와 정밀성 및 전시구조에 놀라웠다. 이외에도 이승만 초대 대통령 전용기와 육. 해. 공군의 비행기, 장갑차 등 전투장비와 전적비가 인근에 있어 의미 깊은 전시장으로 구성된 통일공원이었다.

 

 

 

 

 

 

지구상의 유일한 북한의 김 씨 왕조가 김정은의 독제체제를 굳히기 위해 안간힘을 쓰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핵과 장거리미사일을 개발한 북한이 온갖 핑계를 거듭하며 매일 전쟁 일보직전임을 선전하면서 서울을 불바다로 만들겠다고 우리를 협박하고 있다. 이번여행에 무감각한 국가안보와 아름다운 경치에 취하여 놓칠 번 한 애국심이 통일공원의 관람으로 특별한 의미로 다가왔고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하였다.

 

 

 

폐기하는 구축함을 원조 받아 사용하였던 우리가 세계최강의 대공. 대잠. 대함의 공격과 방어능력을 갖춘 1만톤급 이지스구축함(세종대왕함.KDX3)을 건조 할 능력을 갖게 되었다. 첨단기술이 요구되는 구축함을 건조할 능력은 물론 운영능력, 전투시스템능력도 세계적인 수준이 되었다. 2012년 14개국 2만 명이 참가한 환태평양 해상합동훈련에서 우리가 건조한 이지스구축함이 세계최강의 전투능력이 있음을 평가 받았다. 뿐만 아니라 3000톤급 잠수함의 건조능력과 전투력도 세계적임을 자랑하고 있다. 우리의 국력은 북한의 40배, 인구는 약 2배 등 비교할 수 없는 능력을 갖고 있다. 북한은 300만 명이 굶어죽고, 수십만 명이 기아에 시달리다 탈북을 하고 있는 실정이 안스럽다. 그러면서 오직 김 씨 왕조체제유지를 위한 신격화에 몰두 하는 모습을 두고 봐야하는 현실이 서글프다. 핵개발만 포기하면 북한 주민 3년을 먹여 살릴 수 있었다고 한다. 김일성, 김정일 미라처리비만 아껴도 전 주민 3년의 식량을 살 수 있었단다. 인류의 보편적 가치인 인권은 수용소에 메달아 놓은 북한을 추종하는 종복세력이 활개를 치는 꼴을 두고 봐야 하는지 걱정스럽다. 세계적인 수준의 선진인 우리가 막무가내 식 조폭수준의 북한과 싸우자니 선량한 국민이 피해를 입을 가 바 진퇴양난이다.

 

우리가 꼭 기억해야 할 것은 막강한 전투력 우위를 가진 월남이 월맹에 패배한 이유를 깊이 새길 때다.

1975년 월남이 패망할 당시 정규군이 70만 명, 미군이 지원한 무기 등으로 세계 4위의 군사력을 보유하고 있었다. 반면 월맹군을 정규군 20만 명에 군복도 군화도 제대로 갖추지 못한 거지군대가 승리하는 기이한 현상이 벌어졌다. 당시 월남에는 공산당 9,500명, 공산당과 유사한 인민혁명당원 40,000명이 치밀하게 간첩으로 활약하고 있었다. 1967년 대통령 선거당시 차점으로 낙선한 쭝딘쭈와 모범적인 지사였던 녹따오도 간첩이었다니 군사력의 비교는 아무 의미가 없는 패망의 원인은 내부의 용공세력 간첩이 문제였다. 월남의 중요한 비밀회의 자료가 다음날이면 월맹으로 전해지는 사태가 벌어지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당시 잦은 군사 구데타는 정보기관마저 유명무실화 되었다. 정치적 혼란을 틈타 인권과 민주화를 주장하며 반전평화와 미군철수를 주장하는 민간단체 등 정체를 알 수없는 사회단체와 언론사가 우후죽순처럼 생겨났다. 이러한 조직에 공산당 프락치들이 대거 침투하여, 거대한 반정부·반체제 세력으로 유도하여 국가 기강을 흔들어 버렸다. 휴전협정이 체결되어 미군과 한국군이 철수하자, 공산프락치들이 사이공에는 100여 개의 애국단체, 통일 운동단체와 수십 개의 언론사를 양산하여 좌경화 공작에 앞장서게 함으로서 월남을 패망의 길을 인도했었다.

 

 

우리나라도 좌파 종복세력이 있는 것도 분명하고, 좌파 신문 과 방송사가 있는 것도 숨길 수 없는 사실이다. 국회에 보안법 전과가 있는 의원이 18명이나 된단다. 2004년 육군사관학교 가 신입생의 의식조사에서 주적이 미국이란 대답이 34%이었고 북한이 33%이었다. 같은 해 입대한 신병의 의식조사에서도 75%가 반미 감정을 가지고 있고, 자유민주주의가 공산주의보다 우월하다는 대답은 36%에 불과하였다. 2006년 사법시험 2차합격자 면접시험에서 “주적이 미국이고, 북한 핵보유는 위협이 아니다, 북한이 남침가능성은 없다. 남한은 군대가 필요 없다”는 등의 질문에 80%가 국가관이 없었다는 어느 시험위원이 탄식하였다. 이들이 30대 중반으로 우리나라를 이끌어 갈 중추세력이다. 한나라를 이끄는 국력은 경제력과 군사력 및 국민의 정신력이다. 아무리 경제력이 강하고 군사력이 강해도 국민의 정신력과 애국심이 없으면 장래가 있을 수 없다. 감성적 민족주의와 민주화, 과분한 복지를 주장하는 종북의 가면에 속지 말고 국가의 정체성과 진정한 애국심이 확립되었을 때 평화통일도 가능한 것이다.  

 

 

바다와 접해 아름다운 해안의 중심도시인 강릉의 경치와 민족분단으로 생사를 겨루는 대립의 현장이었다. 전쟁의 슬픔이 배어 있는 통일공원의 관람은 혼란스런 감정을 더욱 뒤엉키게 했다. 

우리 국민은 국가존립을 좌우하는 안전보장에 너무 무감각 한 것은 아닌지 걱정되었다. 민주주의를 표방하면서 독제왕조를 추종하는 종북 세력을 어떻게 계도하여야 할지 고민해야 할 때다.

여행은 즐거웠는데 머리는 더 복잡해 졌다.

 

 

 

 

 

강릉통일공원1996년 잠수함 간첩선.jp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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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릉통일공원강릉통일공원 전시구축함.jp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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