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솜씨/수 필

文解班 작품전을 보며

철산. 케네디 2014. 1. 10. 19:51

 

                            까막눈 뜨게 해준 선생님 고맙습니다

                                  -文解班 작품전을 보며.-                          鐵山  김 종 길

 

 

 

 우리나라 문맹률은 1.7%로 세계에서 가장 낮아 자랑할 만하다.

해방 전후 우리나라는 문맹률이 80%이였고, 애국단체가 문맹퇴치운동을 펼쳤지만 두메산골까지는 미치지 못하였다. 초등학교와 한문을 가르치는 서당이 있는 곳도 있었으나 여자들에게는 높은 벽이었다. 그래서인지 지금 문맹자는 노령인 할머니들이 많다. 최근정부는 문맹자를 줄이기 위하여 노인복지관 등에서 문해반을 운영하고 있다. 우연한 기회에 성남시청 로비 전시장에서 한글을 배우는 문해반 작품을 감상할 수 있는 기회가 있었다. 작자의 이름과 작품내용을 보면서 이들이 3~40년대 전후 태어난 70~80대 까막눈 할머니들이 한글을 배우면서 쓴 작품이란 것을 금방 알 수 있었다. 몇 권의 소설을 쓰고도 남을 굴곡진 사연들을 가슴에 안고 살았을 한 많은 할머니들이 한글을 배우면서 처음으로 쓴 작품들이었다. 맞춤법, 오자, 탈자가 오히려 까막눈을 뜨면서 느낀 순수한 감정과 희열이 오롯이 담겨 있어 가슴 벅찬 감동으로 다가왔다. 비슷한 연배인 내가 초등학교 다닐 때 80여호의 시골마을에서 같은 학년 10여 명 학생중에 여자는 단 한명도 없었으니 지금의 할머니들이 문맹이 많을 수밖에 없었다

 

 

세계에서 가장 못사는 나라였고 농촌인구가 절대 다수였든 시절이었다. 극소수 부유층과 특수한 경우 이외에는 시골에서 딸아이를 학교에 보낼 생각조차 못했었다. 두매 산골에서 태어난 것이 문제였고, 굶기를 밥 먹듯 하는 시절 허기진 배를 채우는 것이 우선이었다. 뿌리 깊은 남존여비사회에서 여자였기에 학교문턱을 넘어 보지 못한 채 한 많은 일생을 눈뜬장님으로 살아 왔다. 일본 정신대를 피하고, 해방의 격량 속에 6. 25전쟁을 거치면서 남편은 전사하거나 부상을 당하는 등 험난한 삶의 현장에서 학교 가는 것이 오히려 사치였다. 입에 풀칠이 바빠 배울 틈이 없었던 사연들이 절절히 배어 있었다. 문맹으로는 살기 힘든 정보화 사회가 파도처럼 밀려오고, 노년에 병들고 외로운 노후를 까막눈으로 사는 자체가 고통이었을 것이다. 한글을 배우면서 대명천지의 새로운 세상을 보는 환희에 찬 행복과 선생님의 은혜가 가득 차있음을 50여개의 작품에 고스란히 담겨 있었다.

 

 

 

 

우리 어머님도 학교문턱을 밟지 못한 문맹자였다. 까막눈이었고 70여년 사시면서 얼마나 답답했을 가 가슴이 아려와 한 동안 눈에 맺힌 이슬로 전시작품을 볼 수가 없었다.

 

  공부를 못한 조 씨 할머니의 사연을 쓴 “공부가 좋아요”란 작품에서 “ 학교애 가지모태서 한니 튓서요/ 부모를 몸 만나서 공부모태서 한이 됬서요/ 선생님 마나서 행복합니다“면서 학교 못간 것, 부모 잘 못 만난 것, 공부 못한 것이 한이 되었단다. 오자. 탈자는 오히려 자연스러웠고 이해 못할 사람은 없을 것 같았다. 지금은 한을 풀었고 며느리 손녀딸 같은 선생님에 대한 존경심에 행복이 흘러넘쳐났다.

곽 씨 할머니는 “집에 증조할아버지가 게집애가 글을 배우면 커서 시집가면 시집살이 할 때에 친정에다 편지질만 자주한다고 학교를 가지 말라고 해서 못 갔습니다. 친구들이 학교 가는 것을 보면 부끄럽고 눈물만 흘렸다“는 작품에서 여자라는 이유만으로 학교에 못간 감수성 많은 어린 마음의 상처가 고스란히 아려있었다.

초등학교를 졸업하고 한동안 중학교 진학을 못한 내가 경험한 것보다 더 가슴이 아파했을 여린 여자의 마음을 이해하고도 남음이 있어 가슴이 찡해 왔다.

88세의 박 씨 할머니는 “초등학생”이란 작품에서 “입가에 미소를 띠우며 버스와 지하철을 타고 학교에 간다. 힘든 계단도 오르고 이마엔 땀방울... ㄱ.ㄴ.ㄷ.ㄹ.....ㅏ. ㅑ.ㅓ.ㅕ 오늘 배운 것 떠 올려 본다. 머리에 구멍이 난나 보다. 배우는 대로 빠저 나가는 기억들 .... 아침교실 먼저 온 광주댁. 수원댁. 시끌벅적 웃는 소리 왁자지걸 떠드는 소리 영낙없는 초등학교 교실.. 행복한 서로사랑 문해학교“ 88세의 나이에도 배우는 것이 얼마나 기뻤으면 버스와 지하철을 타고, 땀방울이 나도록 힘든 계단을 오르내리며 배웠으나 다 빠져나가고 기억에는 없어도, 왁자지껄 한 교실은 8살 8개월 된 초등학교 2학년 학생 같이 활기차고 행복해 함빡 웃음 웃는 할머니가 눈에 선히 보였다.

 

 

문맹을 벗어난 기쁨에 대하여 “고맙다는 사람에게 고맙다는 글 한자 써보지 못 했네/ 사랑하는 사람에게 사랑한다는 말 한마디 써보지 못 했네/ 한글 깨우치고 나서 남편에게 제일 먼저 써 보았네/ “여보 사랑합니다”/ 글을 읽던 남편이/ 빙그레 웃으며 나를 꼭 안아 주네/ 말보다 글이 이렇게 힘이 세다는 걸 /이제야 알겠네“ 얼마나 행복할까. 기쁨에 미소 짓는 얼굴에서 아침 햇살 같이 피어나는 것 같았다.

또 다른 할머니는 “86세에 눈뜬다/ 이름도 몰랐던 나/ 세상에 다시 태어 났네 / 기억(ㄱ)도 몰랐던 나/ 세상이 다시 새로워 젔네 / 지금은 즐겁고 신기하네/ 이제는 공과금도 볼 수 있네/ 이제는 어디든지 갈 수 있네/ 답답한 세상에 눈을 뜨게 해준 선생님에게 감사합니다.”이글은 눈을 뜬 한 마리 새가 공과금 고지서를 물고 하늘을 날아 은행으로 가는듯한 기쁨과 행복이 넘쳐 흘렸다. 홀로 사는 서 씨 할머니는 “나를 많이 이쁘해준 연감님/ 언제나 사랑하 준 연감님/ 지금은 세상에 없는 영감님/ 잘해주지 못해 미안해요”라는 시에는 때 늦게 다소곳이 수줍은 소녀의 사랑 고백을 하는 것 같았다. 하늘나라 할아버지도 얼굴이 달아오르면서 혼자된 외로움을 안타까워 할 것 같기도 했었다. 손녀딸을 일기 쓰는 과외 선생님으로 둔 심 씨 할머니는 “손녀딸을 과외 선생님으로 뒀다. 매일 매일 일기 코치를 하기로 했는데 손녀가 처음에는 잘 가르쳐 주더니 오늘은 저 할 일 안하고 탄청만 부리면서 내 애간장만 태우지“란 하소연에도 손녀선생님과 할머니학생 조손(祖孫)간의 애정싸움에 저절로 웃음이 나와 더욱 재미있었다.

 

 

전시 작품을 읽는 내내 어머님 생각에 가슴이 아려왔다. 까막눈으로 도시생활을 하면서 얼마나 힘들고 답답했을까. 나와 동생들이 짬을 내어 어머님께 한글이라도 깨우쳐 드리지 못한 것이 가슴을 찌르는 한이 되어 다가왔다. 문해작품전을 보면서 비로소 깨닫고 후회한들 돌아가신 어머님에 대한 불효의 허물을 벗을 길은 없었다.

 

 

                                         전국 문해반 골든벨 대회(2014년 2월 2일) 방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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