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솜씨/수 필

도토리 줍는 할머니

철산. 케네디 2013. 10. 12. 23:29

 

                                        도토리 줍는 할머니

                                                                鐵山  김 종길

 

할머니 “도토리 많이 주었어요.” 하면서 나도 모르게 눈에 보이는 도토리를 줍기 시작했다. 어릴 때 할머니와 내가 벼이삭, 보리 이삭을 줍든 생각이 스치고 지나가면서 자연스런 반사적인 행동이었다. 나는 무의식적으로 그 할머니를 따라 한참동안 도토리를 주었다. “서울에 사는 중학교 일학년 자리 손자가 오면 묵을 소아 먹일 거라”면서 편치 않아 보이는 굽은 허리를 가끔 펴면서 열심히 도토리를 줍고 있었다. 할머니들의 손자사랑은 어쩔 수가 없는 가 싶다. 손자가 먹을 만큼의 도토리묵 두 모 정도는 사오천 원이면 살 수 있을 텐데, 굽은 허리에 험한 산길을 누비며 도토리 한 알 한 알의 손자사랑을 주어 담았다. 묵을 솔려면 도토리를 줍고, 껍질을 까서 물에 담근 후 믹스기에 갈고, 채에 걸러서 큰 알갱이는 또다시 갈아 그 도토리 물의 앙금을 끓여 묵을 만드는데 2~3일은 족히 걸리는 그 많은 손길을 어찌하시려고...

손자가 첫 월급에 양말 한쪽 얻어 신을 수 있도록 오래도록 사셔야 할 텐데....

 

개천절 날 딱히 할 일도 약속도 없고 해서 일주일 두세 번 가는 산행을 예정에도 없이 간소 복 차림으로 남한산성을 갔다. 등산객이 많은 길을 피해 공예전시관 뒷길을 택했다. 그 길은 검단산 오부능선을 타고 사기막꼴 쪽으로 가면 한 시간 반정도면 넉넉히 갈수 있는 오솔길이고 사람이 적어서 평소에도 가끔 이용하는 등산로다. 그 길은 외지인에게 잘 알러져 있지 않았고 평일에는 한적한 길이였는데 그날은 공휴일이라 괘 사람이 많았다. 조금 올라가다 보니 칠십 중반으로 보이는 할머니가 도토리를 줍고 있었다.

 

내가 어릴 때 시골 벼농사 보리농사일은 모두가 인력으로 농사를 지었다. 오늘날 기계와 자동화된 농사에 비하면 수십 배 인력이 필요한 원시적인 수준이었다.  수확 철이 되면 노동력이 약한 할머니와 나는 항상 바구니를 들고 보리이삭, 벼이삭을 줍는 것이 일과였다. 당시는 높고도 험한 보리 고개가 있든 시절이라 보리이삭 벼이삭 그 한 알도 알들 살들이 주어서 살림살이에 많은 보탬이 되었다. 밥상에 흘린 보리밥 한 톨도 주서 먹지 않으면 어른들에게 야단맞든 시절이었다. 도토리 줍는 저 할머니도 우리 할머니나 나와 같이 어느 시골에서 분명히 벼 이삭을 주워본 경험이 있기에 손자사랑과 옛 추억에 젖어 험한 산길을 마다않고 도토리를 줍고 있겠지. 내가 주서 모은 한 되 박 정도의 도토리를 드리면서 “할머님 손자 장가가서 증손자 보시도록 오래 오래 건강하게 사세요.”하고 가든 등산길을 계속했다. 어린 시절 아름다운 향수와 할머니의 사랑이 드라마 한 장면처럼 스치고 지나갔다.

 

오색찬란한 등산복에 먹을 것이 듬직한 배낭을 메고 무리지어 가는 등산객을 뒤 따라갔다. 운동화에 간소 복을 입고도 오를 수 있는 곳이 남한산성이다. 그런데 등산객 대부분은 에베레스트 산에 올라가도 손색이 없을 정도의 유명 메이커 등산복에 등산화. 배낭, 모자, 스틱에 선글라스까지 끼고 있는 사람도 있었다. 내 앞서가는 젊은 등산객에게 “등산장비를 구비하는데 대략 얼마정도 소요됩니까.”하고 물어 보았다. 그는 “여름등산장비는 대략 6. 7십만 원, 겨울 등산복은 백오십만 원 정도 소요 된다”며 대수롭지 않는 돈이라는 뜻 대답했다. 비산 등산복을 걸친 철없는 등산객이 사오천 원을 아끼며 도토리 줍는 저 할머니를 업신여기거나 비웃지나 않았으면 좋겠다. 저 사람들이 할머니가 한 알 한 알 주서 모은 도토리에 그 많은 일손을 거처 정성을 다한 웰빙 천연식품 도토리묵의 손자사랑을 알기나 할까.

몇 만 원은 고사하고 굽은 허리에 험한 산비탈을 누비며 도토리 줍는 할머니의 운동화라도 사준 자식들은 있었을까? 할머니가 무슨 신발을 신었는지, 누가 사주었는지 물어나 볼 걸...... 한동안 할머니에 대한 궁금증에 등산길이 휘청거렸다.

 

 

낮은 뒷산을 오르면서 전문 산악인처럼 백여만 원이 훌쩍 넘는 등산장비를 갖추는 과소비의 심각성은 성인들 자신의 문제가 아니다. 그 본을 받는 자식들이 문제이다. 교복자율화 되면서 중고등 학생이 몇 십만 원의 유명 메이커가 아니면 시체 말로 쪽팔린다면서 힘든 부모님 허리가 휘는 줄도 모른다. 그러다 안 되면 패륜적 사건을 신문지상에 볼 때마다 너무나 안타깝다. 그 근본적 책임이 누구에게 있는지 구분하기 어렵다. 저 할머니의 손자도 몇 십만 원의 옷을 입고 할머니가 험한 산비탈에 한 알 한 알 주어 몇 칠을 두고 만든 사랑의 도토리묵을 4. 5천 원 하는 농말가루가 섞인 시장에서 산 가짜 도토리묵으로 착각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산에는 백 수십만 원으로 치장한 등산객이 붐비고, 학교에는 몇 십만 원 자리 학생복을 입은 학생들이 운동장에 넘쳐난다. 거리에는 돈은 있으면서 속옷 같은 내복만 입은 미시들이 활개를 치고 다닌다. 개성이고 유행이라며 찢어지고 허물거리는 속살이 보이는 청바지와 핫팬티가 지하철에 판을 친다. 사리분별하기가 혼란스럽고 정신병 환자가 늘어나는 이유를 알 것 같기도 하다.

개성 없는 아버지의 과소비에 개념 없이 키운 아들의 낭비벽을 탓 할 수도 없다. 조신하지 못한 미시엄마가 분별없고 철없이 키운 딸을 나무랄 수도 없다. 허 왕 된 풍요만 있고 절제는 생각한 적도 없는 것 같다. 자유와 방임을 구별하지 못하니 기본적인 범절은 실종되고 말았다. 모두가 제 멋만 부리고 주변과 더불어 사는 우리무시하니 사회가 어지럽고 현기증이 난다.

 

 

허영으로 치장한 등산과 학교 운동장보다, 범절 없이 누비는 거리의 자유보다, 할머니가 험한 산 마다않고 한 알 한 알 주서 만든 사랑의 도토리묵이 가정과 건강을 지키는 참살이(웰빙)와 건강(힐링)의 기본이 아닐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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