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삿 밥
鐵山 김 종 길
새벽 두시가 넘은 시간에 “할머니 문 좀 열어 주세요.” 이웃집에서 제사를 지내고 환갑을 넘긴 할머니에게 제삿밥을 차려온 것이다.
50년대 보리밥은커녕 콩나물죽도 배불리 먹을 수 없던 시절이었다. 평소에 쌀밥은 구경도 할 수 없었던 시절에 하얀 쌀밥을 먹는 것이 꿈이었다. 환갑을 지난 할머니 덕분에 친척이나 이웃집에 제사가 있는 날이면 꼭두새벽에 하얀 쌀밥과 삼색나물에 비빈 제삿밥을 먹을 수 있었고 떡과 유과 한 조각을 얻어먹었던 것이 큰 행운처럼 생각하였다. 새벽이라 허기진 공복에 하얀 쌀밥에 고소한 참기름에 볶은 삼색나물에 깨소금과 간장을 알맞게 넣고 비빈 제삿밥은 지금까지도 내가 먹었던 음식 중 에 세상에서 제일 맛있는 음식이었다.
우리 집에서는 음력 9월 달에 할아버지 제사가 있었다. 마침 추수한 후라 그때만큼은 음식을 풍성하게 차렸다. 잠을 설친 새벽에 내가 앞에서 등불을 들고 뒤 따르는 작은어머니는 제사음식을 소반에 담아 관례대로 이웃 어른들께 제사음식을 드리는 것이 왜 그리 신이 나고 즐거웠는지.... 그러고도 다음날 또 쌀밥을 먹고 음식이 많은 것에 어깨가 어석해저 콧노래를 부르며 동내 어른들을 초청하는 심부름은 내 차지였다. 동내 어른들이 오시면 갖가지 제사음식을 개인별로 상을 차려 대접하는 풍습이었다. 정이 넘치고 훈풍같은 인심에 콩 한쪽각도 나누어 먹던 시절이었다. 거기에 할머니의 큰 손자 자랑이 곁들여지고, 마음껏 먹을 수 있는 제사 음식이 있었고, 친구들에게 떡 한 조각 씩 감질나게 나누어 줄 수 있는 재미까지 더하면 그날의 내 기분은 하늘을 나는 비들기보다 더 높이 날았다.
올 추석에도 온 가족이 차례를 지내고 제사 밥을 비벼 먹어보았지만 그 때 그 맛이 아니었다. 사시사철 쌀밥에 넘쳐 나는 반찬에 입맛을 돋우었으니 영원이 찾을 수 없게 흘러가버린 옛 추억의 맛이 되고 말았다. 길거리마다 즐비한 음식점에서 손님을 끌기위해 온갖 잔머리를 굴리며 조미료 섞어 만든 음식이 제삿밥 맛을 훔쳐 간지 오래되었다. 40세 저후가 되면 기름진 음식에 태산 같은 배를 안고 비만이네 성인병이네 후회하며 헬스장과 병원 찾기에 바쁘다. 가게마다 넘쳐나는 인스턴트 음식 맛에 휘둘려 제삿밥의 옛 맛을 찾는 것은 꿈이 되고 말았다.
그래도 헬스장과 병원 틈새를 비집고 들어 온 상술이 전통음식과 건강식, 잊어져 가는 추억의 입맛을 내 걸고 만든 헛 제삿밥이 영남지역에서 그 명맥을 유지하고 있는 것 같다. 그 시절 제삿밥을 먹어본 60대 이후의 보릿고개 세대는 잊어져 가는 첫 사랑 같은 그 추억의 제사 밥을 찾아 수 백리 길을 마다 않고 찾아간다. 지금도 영남의 안동지역과 진주 통영지역에는 헛 제삿밥이 대표향토음식으로 유명세를 타고 있다. 안동지역의 헛 제삿밥의 유래는 고을 원님이 제삿밥을 먹어 보고 그 맛을 못 잊어 수시로 제삿밥을 먹기를 청하니 하는 수 없이 헛 제삿밥을 지어 올린대서 유래 했다고 한다. 진주지방 역시 양반들이 제삿밥은 먹고 싶은데 굶주린 백성들 눈치가 보여 거짓으로 제사를 지내고 제삿밥을 먹은 대서 유래했단다. 유래야 어떠하던 그 당시 제삿밥이 양반들이 헛 제사까지 지내면서 먹을 정도로 맛이 있었던 것은 분명하였던 것 같다. 제삿밥은 쌀밥에 삼색나물과 탕국을 기본으로 한 비빔밥을 말한다. 삼색나물에는 고사리, 도라지, 시금치, 콩나물, 숙주나물, 무나물 등 삼색 나물을 사용하였다. 탕으로는 쇠고기육탕, 북어. 오징어. 홍합의 어탕, 두부와 무를 이용한 소탕 등 삼탕이 있었으나 요즘은 여러 가지를 혼합해서 막탕을 끊이기도 한다. 쌀밥과 삼색나물에 탕국을 적당히 넣고 참기름과 깨소금을 더하여 간장으로 간을 맞추어 비빈 제삿밥의 그 담백한 맛은 천하일품이었다. 원래 제사에 쓰는 삼색나물에는 금기시한 오신채((五辛菜: 마늘. 파. 부추. 달래. 고추. )를 쓰지 않고도 담백한 맛을 낼 수 있었다. 제삿밥과 삼색나물에서 유래된 제사비빔밥이 지역과 입맛, 시대에 따라 변형발전 된 것이 전주비빔밥 등 전국적으로 특색 있는 비빔밥으로 발전한 것 같다. 유명한 마이클잭슨도 비빔밥 마니아가 될 정도로 좋아 하였다. 우리나라를 대표하고 세계인이 좋아하는 국제선 기내식과 건강식인 비빔밥의 기본이 제삿밥에 유래 되었다고 볼 수 있다.
어른들이 새벽에 이웃집에서 온 제삿밥을 비빌 때 나는 고소한 참기름과 깨소금 냄 새는 허기진 내 오장육부를 뒤집을 정도로 먹고 싶은 꿈의 음식이었다. 혹시 나를 깨우지 않고 다 먹으면 어쩌나 하고 자면서 몸부림을 치는 척하면서 깨어나 몇 숟 갈 얻어먹든 어린 시절의 그 제삿밥 맛이 내 몸속에 깊은 뿌리를 박고 있는 것 같 다. “시장이 반찬”이라는 말 같이 굶기를 밥 먹 듯 하던 시절 쌀밥을 먹는 것이 꿈 이었으니 제삿밥의 그 맛을 영원히 잊을 수가 없다.
이밥을 먹는 것이 소원이었다는 탈북자 들, 매스컴에서 배가고파 쓰레기통을 뒤지는 북한 어린이들을 보면 제삿밥의 추억이
되 살아나곤 한다. 그 시절의 그 제삿밥의 맛, 세월이 되 돌아오지 않는 한 그 맛을 찾을 수 없을 것이다. 찾지 못하는 첫
사 랑 만큼이나 아름다운 추억의 제삿밥 맛을 잊을 수는 없어도, 풍요로운 지금이 행복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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