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솜씨/수 필

축제 같은 졸업식

철산. 케네디 2014. 2. 14. 19:53

 

                                           축제 같은 졸업식

                                                   鐵山  김 종길

 

 

"할아버지 할머니 졸업식에 꼭 와야 되요. "

"젊은 부모들이 많이 오는데 어울리지 않게 늙은 할아버지가 무얼 하려가."

“아니요 꼭 와야 되요”하고 다짐을 받기에 간다는 대답을 하였다.

 지난 목요일에 쌍둥이 친손자 고등학교 졸업식에 갔다 왔으니 외손자 중학교 졸업식에 안 갈수가 없었다.

 특히 집에서 두 부록 건너 학교가 있으니 못 간다는 핑계삼을 거리가 없었다.

 

 

10시부터 시작된 졸업식에 30분이 지나서 식장에 도착해 보니 학생 개개인 졸업장을 수여하고 있었다. 일반적으로 졸업식장에서는 졸업생대표나 각반대표에게 졸업장과 외부기관이 수여하는 상장만 수여한다. 그리고 각 졸업반 교실에서 담임선생님이 개인별로 졸업장과 앨범 및 상장을 수여하는 것이 보편적인 현상이었고, 친손자 졸업식도 그렇게 끝이 났다.

 

이 학교는 강당이 넓고 졸업생 수도 160명 정도라 학생개개인을 단상에 불러 교장선생님이 직접 졸업장과 앨범을 수여하고 있었다. 학생은 호명과 동시에 단상의 스크린에 학생개인별 큰 사진과 장래희망과 꿈 그리고 좌우명, 부모에 대한 소감과 다짐이 영상으로 크게 소개하고 있었다. 몇 일전 친손자 졸업식과는 완전히 다른 분위기에 새롭고 신선해 보였다.

 

 

졸업생은 자신의 사진이 선생님들과 내빈, 학부모, 졸업생, 재학생 등 많은 사람이 주목하는 자리에서 클로즈업되는 것은 처음일 것이다. 더구나 장래 꿈과 좌우명 그리고 부모에 대한 소감과 다짐을 대중 앞에 밝히는 것은 대단히 뜻있는 일임이 분명해 보였다.

장래 꿈과 희망에는 유엔사무총장, 장관, 판사 검사 변호사, 대학교수 등 엘리트들만이 할 수 있는 직업도 있었다. 그리나 대부분은 초등학교교사. 스튜어디스, 간호사, 요리사, 호텔리어, 헤어 디자이너 등 평범하고 현실적인 꿈이 많은 것도 인상적이었다. 특히 부모에 대한 소감과 다짐에는 부모님 속 석여 죄송하다는 반성과 앞으로 열심히 공부하고 효도하겠다는 다짐이 많았다. 그리고 소신 있게 “저가 알아서 할 것이니 간섭하지 말아 주시면 좋겠다.“는 용감한 학생도 있었다. 선생님과 학부모. 후배들 앞에 다짐힌 약속이니 앞으로 사회생활에 많은 지표가 될 것이다.

 

 

그리고 축하공연이란 프로그램이 있기에 재학생들의 공연을 예상했고 실제 한 팀이 나와 공연으로 끝이 났다. 그 다음부터 졸업생들이 각반별로 준비한 자축공연이 벌어졌다. 각반이 스스로 기획하고 공연하고 진행하는 다양한 장르의 프로그램이었다. 팝에서부터 랩, 트로트, 신나는 학창시절의 트위스트는 물론 독창, 중창, 합창, 그룹댄스까지 자유분방한 축제였다. 학생과 선생님 학부모가 손 벽 장단을 치고 단하의 일부학생과 선생님은 춤을 추는 흥겨운 축제의 장으로 변했다. 대한민국에 노래방이 생기면서 가수 아닌 사람이 없고, 스마트 폰이 생기면서 사진작가 아닌 분이 없고, 공중파, 유선방송국, 인터넷 등 TV채널이 다양화 되면서 엔터테인먼트가 수도 없이 많아졌다. 웹과 정보의 홍수로 작가 아닌 분이 없다드니 중학교 졸업식이 종합공연축제장으로 변하였다. 학생 스스로 진행하는 행사라 서투름과 약간의 무질서가 오히려 축제의 흥을 더해 주었다. 너무나 멋있고 창의가 돋보이는 새로운 스타일의 졸업식이었다.

 

 

가끔 딸이 자식 키우기가 힘들다는 말에, 약간 엉뚱한 데가 있는 막내 외손자 중학생인 이놈이구나 하는 생각에서 “야 이놈아 우리 딸 속 섞이면 너 혼날 줄 알아”하면 “저도 할아버지 손잔데요”하며 능청을 떨던 놈이었다. 새로운 아파트 단지가 생기면서 우리가 이사를 하니 딸네도 근처로 이사 왔다가 교회가 있는 곳으로 뒤돌아 갔다. 그런데 이십리가 족히 되는 거리임에도 막내외손자는 다니던 학교를 계속 다니고 있었다. 교통비와 시간을 낭비하지 말고 집 근처 중학교로 전학 가라고 하면 “내가 전학가면 우리 학교는 문 닫아야 되요”하면서 너스레를 떨곤 하였다. 집근처에 있는 학교라 또래 학생들에게 손자이름을 데면서 아느냐고 물으면 “우리학교 스타”란다. 사춘기에다 중학생 키가 180정도에, 계집애 같이 예쁜데다 엉뚱하게도 탤런트학원을 다닌다니 갱년기를 겹친 딸은 속이 상할 수밖에 없겠다 싶었다.

 

오늘 어침에 일부러 전화로 할아버지 꼭 졸업식에 오라는 이유를 식장에 와서야 알 수 있었다. 졸업장을 받고 단하에 늘어선 선생님들에게 다른 학생은 악수만 하는데 이놈은 여선생, 남선생 할 것 없이 포옹하면서 유난을 떨었다. 축하 공연에는 여학생과 듀엣을 하드니, 그룹댄스에 합창까지 하는 등 이 옷 저 옷을 갈아 입어며 바쁘게 오가면서 공연준비와 공연 등 주도적인 역할을 하는 것 같았다.

 

 

학교와 선생님이 주도하는 절제된 졸업식보다 졸업생이 자기의 꿈과 희망을 다지며 자기의 장기를 자랑하고 창의력을 발산하는 축제의 장인 졸업식이 멋져보였다.

속상해 하던 딸도 손 벽치고 노래하며 유별난 아들의 졸업식을 보고 입가에 미소가 번지고 있었다. 다양성을 요구되는 사회에 공부만이 아닌 개성 있는 외손자의 활동과 축제 같은 졸업식이 나에게는 신선한 충격으로 다가왔다.

 

 

 

                                                                  외손자의 듀엣공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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