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월호 참사! 온 국민의 책임이다
鐵 山 김종길
302명의 영전 앞에 어른이기에 미안하고, 말을 잘 들은 것이 오히려 화가 되었기에 너무나 부끄럽고 죄스럽다.
속죄를 해야 할 모리배들은 꽃다운 학생들의 죽음을 이용하여 온 나라를 촛불 시위장으로 만들었고, 생트집으로 나라의 정체성을 흔들고 있다. 국민이 선출하고 5000만을 대표하는 대통령의 하야와 나라의 근간을 흔들 목적으로 북한을 대변하는 뜻한 자들이 대한민국 한복판인 세종로와 청계천을 뒤덮고 있다. 6. 4지방선거에도 정책과 인물은 보이지 않고 세월호 사건의 책임문제가 중요한 이슈가 되었다. 선진국 진입과 세계의 10대 경제대국이 국가의 정체성이 흔들리고 국민을 혼란케 하여 國格에 심각한 손상을 주는 작태는 더 큰 국가안전에 문제가 아닐 수 없다.
2014년 4월 16일 일어난 세월호 사건은 476명 승객 중 174명의 생존자이외 302명이 사망 또는 실종하는 참사가 일어났었다. 생존자 중 1차 구조 자 47명 가운데 선장을 포함한 선원 10명이 먼저 탈출했다니 도저히 믿을 수가 없다. 승객의 생명구조에 목숨을 걸어야 할 선장이 학생들에게 “위험하니 움직이지 말라”는 명령만 하고 제일 먼저 구조선을 타고 탈출했었다. 이러한 파렴치한 행위는 모든 국민을 분노케 하였고 망연자실했었다. 그러나 국민의 안전문화수준의 측도인 우리 스스로 안전관리에 한 점의 부끄럼 없이 책임과 임무를 다하고 있는지, 그것이 나의 자화상은 아닌지, 뼈에 사무치게 반성해야 할 때이다.
1912년 4월 14일 세계최대의 여객선 타이타닉호의 최초 시험운항 중에 침몰 하였다. 당시 2223명의 승객 중 생존자는 706명 약 32%였다. 생존자 중 여자승객은 74%, 어린이는 52%나 생존하였었다. 그러나 남자 승객은 구명보드를 탈 수 있는 차례에도 약자인 어린이와 여자에게 양보한 결과 20%가 겨우 생존하였고 80%는 타이태닉호 참몰과 함께 희생되고 말았었다.
그 배에 타고 있던 당시 미국의 거부인 벤 자맨 구겐하임은 구명보드를 탈 차례에 여자에게 양보하면서 “내가 정정 당당하게 약자에게 양보했음을 아내에게 알려 달라”는 마지막 말을 남기고 타이태닉호와 함께 침몰하였다. 역시 미국 최고의 갑부 존 제이콥 아이돌서 톨 씨도 부인을 먼저 구명보드에 태우고 자신은 죽음을 택했었다. 100여 년 전 당시 해운관계 법이나 규칙이 있었는지는 알 수 없으나 책임 있는 남자들이 약자에게 생존할 수 있는 기회마저 양보하고 죽음을 택했다는 사실이다. 그것이 미국 뿐 아니라 선진국 사회지도층이 존경 받는 도덕적 의무인 Noblesse Oblige가 몸에 밴 문화수준이고 모범적인 실천이다.
2001년 9월 11일 미 국방성 공격과 미국의 랜드 마크인 쌍둥이 무역센터 빌딩이 빈 라덴의 계획적인 테러를 당하여 흔적도 없이 사라졌었고 3,000여명이 사망했었다. 미국인의 자존심의 실추는 물론 정부가 책임져야할 테러사건임에도 정부의 책임을 의도적으로 힐난하거나 비애국적이고 감정적인 매스컴이나 비이성적인 국민이 정부를 비나하는 예는 거의 없었다.
2011년 8월 인종차별과 다문화의 충돌, 청년들의 분노라고 볼 수 있는 ‘앵글랜드 폭동’이 영국에서 일어났다. 도시 곳곳에 폭도들의 방화와 상점의 상품까지 약탈하는 후진국 형 폭동이 확대되었다. 객관적으로 경찰의 초기대응이 한심하였고 5일간 무법천지가 되였다. 아프리카 사람들까지 “우리는 영국을 도울 준비가 되어있다”는 놀림을 할 정도였다. 그러나 영국의 의회는 여야 어떤 의원도 경찰의 늑장진압과 소방관의 비효율적 대응을 비난하지 않았었다. 그들은 합리적인 이성과 애국심이 감정을 억눌러 사태수습과 장래문제해결에 누구보다 앞장섰다.
미국의 9.11테러 당시 무역센터 남쪽 건물의 24층에 입주한 모건스탠리 회사의 안전관리책임자 릭 리스콜라는 북쪽 건물이 공격을 받는 것을 보고 전 사원에게 무조건 탈출하라는 다급한 지시를 내렸다. 그 후 17분 후 남쪽 건물도 공격 받았고 56분 후 무너져 내렸다. 모건스탠리 직원 2687명 전원이 대피했다. 그러나 그는 전사원이 대피여부를 확인하기위하여 다시 건물에 들어갔다가 시신도 찾지 못하는 장열 한 죽음을 택했다. 그는 생전에 매년 전 직원의 거센 반발에도 아랑 곳 하지 않고 재난 시 24층에서 비상계단을 이용하여 대피하는 훈련을 실시하였기에 전 직원이 생존할 수 있었다. 훈련 때마다 회사 간부들마저 시간당 수백 달러의 임금인 직원들을 총동원한다면서 노골적으로 불평을 했었다. 그러나 그는 "연봉보다 중요한 것은 당신들의 생명"이라고 주장하며 매년훈련을 강행했었다. 자기의 책임을 충실히 다한 그는 2686명 전 직원의 생명을 살리고 마지막까지 자기책임을 다하다 고귀한 희생을 하였다.
이제 우리는 사고의 근본원인이 국가와 정부, 특히 국회와 국회의원, 기업과 근로자. 모든 사회와 국민 각자 자신에게 있음을 자인하고 다시는 이러한 참사를 방지하는데 최선을 다하여야 한다.
정치인의 태만으로 선박안전관리법안이 국회에서 잠을 자고 있었으니 사고의 책임 1호는 국회의원이다. 안전을 감독하는 곳에는 관 피아가 독점하고 있었다. 사악한 기업인이 이익추구에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았고, 현장 책임자인 선장의 무책임의 극치였다. 정치인, 관료, 기업인, 근로자, 국민 등 남만 탓하는 총체적인 부정과 안전 불감증이 참사의 근본원인이었다. 남을 탓하기 전에 국민 각자가 안전문화의 가장 기본인 차량운행질서를 준수하고 있었는지, 건널목 신호를 잘 지켜 건너고 있었는지, 민방위훈련에 스스로 참여한 적이 있었는지, 전 국민이 직간접으로 책임이 있는 종합적인 부실이 부른 인재요 참사였다.
세월호 참사 후 듣지도 보지도 못한 수많은 언론이 확인도 되지 않는 허위사실이 난무하고 일부 불순세력이 국민을 호도하여 진실과 상관없이 분노하게 만들었다. 광우병재발을 유도하는 언론이 앞장서 온라인 오프라인 상에 무책임하게 유포하였었다. 당시 실종자 가족들의 극도의 슬픔과 흥분 속에 혼란이 가중되었다.
실종자 가족 한 분이 “우리 조금만 참자”고 했다가 미친년이란 욕을 바가지로 들었다. 그는 “그래요 나 미친년이요. 딸은 물속에 있어요. 그래도 우리는 참아야 해요“라고 이성적이기를 외치다 미친년으로 몰렸었다. 또 다른 실종자 아버지는 해경들을 가리키며 “저분들을 내일도 일하게 해줘야 한다. 우리 마음을 바꿔, 수고 한다. 고맙다“는 말을 하자는 그 아름다운 말은, 왜 그 벌 때 같은 매스컴들은 침묵하고 있었는지 알 수가 없다. 정의를 부르짖는 그 많은 언론들이 세월호의 참사의 원인인 총체적 부정과 부조리를 수년간 왜 밝히지 않고 못 본 척 침묵하였는지 그것 또한 의문이다. 객관적이고 선도적인 언론의 기본기능은 무시하고 허위사실을 유포하거나 말초신경을 자극하는 사이비 언론의 자유로운 선동도 큰 문제였다.
그래도 우리는 한 가닥 희망을 보았다.
세월호 승무원 박지영 씨는 사고 당시 혼란에 빠진 승객들을 안심시키며 구명조끼를 나눠주고 구조선에 오를 수 있도록 돕다가 자신은 미처 빠져나오지 못하고 참변을 당했다. 결혼을 앞두고 있었던 세월호 아르바이트생 김기웅 씨와 승무원 정현선 씨도 학생들과 선내에 남아있는 승객들을 구하려다 희생되고 말았다. 단원고 2학년 양온유 양도 친구를 구하려다 자기 목숨을 바쳤다. 어느 희생자 아버지는 국민의 세금으로 치루는 장례비를 아껴야 된다는 숭고한 희생과 아름다운 분들이 있었기에 아직도 우리들의 장래는 밝다는 것을 보았다.
총체적인 부실과 부정부패를 개선하기 위하여, 남을 탓하기 전에 대통령을 비롯한 모든 공직자와 국민이 스스로 반성하는 혁명적 개혁과 실천이 절실히 필요할 때이다. 나의 잘못으로 302명의 고귀한 생명이 희생되었음을 거울삼아 경제대국에 걸 맞는 안전시스템과 국민의 안전문화수준을 높이는 기회로 삼아야 할 때이다.
나부터 반성하고 실천하여야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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