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솜씨/수 필

내 인생의 Mentor (2)

철산. 케네디 2014. 5. 18. 01:54

 

                               내 인생의 Mentor (2)

                                                                 鐵山 김 종 길

 

“세상에 선배인 내가 내 봉급에서 예산관계로 고생하는 후배에게 경비에 보태라는 성의를 무시하고, 누가 무어라 하면 내가 책임지면 될 것 아니야” 나 과장님은사무실이 뜨나 갈듯 한 소리로 보통 화가 나신게 아니었다. 그러나 상호 업무와 관계가 있는 돈이라 문제가 될 수 있음으로 받을 수 없다니까 더 큰소리가 났고 결국 국장과 청장까지도 알게 된 소란이었다.

 

 

나 과장님은 가족이 서울에 있어 한 달에 한번정도 상경하시면 본청에 들리곤 했다. 나도 없는 사이 내 책상서랍에 돈 2만원 든 봉투와 예산업무에 경비로 보태라는 메모지도 같이 들어 있었다. 그 분은 경제기획원 근무하셨던 분이라 예산 담당자의 고충을 잘 알고 있었기에 후배인 나를 생각한 배려였다.

봉투를 본 나는 혼비백산을 했었다. 분명히 업무관계라고 볼 수 있는 돈이라 조용히 등기로 도로 마산으로 돌려보냈었다. 당시는 서정쇄신의 칼바람에 서슬이 퍼렇던 시절이었다. 교통순경이 우연히 만난 택시기사인 고등학교동창과 커피 한잔을 마신 것이 문제가 되었다는 소문이 돌 정도였다. 그러니 조용히 처리 하고자 했던 내 뜻과는 달리 나 과장님이 큰 소리에 다른 사무실까지 들릴 정도의 소란이었다.

 

 

1974년 국립지질조사소 예산을 담당하다가 경제기획원의 권유로 공업단지관리청 예산담당으로 전출하게 되었다. 기획원 예산국 직원들로 부터 마산수출자유지역관리소에 근무하는 나00 과장의 이야기를 들었고 그 전에도 들은바 있었다. 그 분이 기획원에 근무하면서 워낙 청렴하고 친절하여 원내 직원뿐 아니라 기획원을 출입하는 다른 부처직원들도 알 정도로 소문이 나있는 분이었다. 그 분은 처음 방문하는 외래인이나 다른 부처 직원들 까지도 직접 찾는 과 또는 찾는 직원의 면전까지 안내해 주시는 친절한 분으로 유명하였다.

더구나 경제기획원 예산국 사무관으로 있으면서 어려운 사람을 도와주는 천성 때문에 본인은 청량리 임업시험장에 천막을 치고 산다는 소문이었다. 그 소문을 들은 당시 최각규 차관이 주동이 되어 임대 아파트를 주선 해 주었다는 사실도 잘 알려져 있었다. 그런 나 과장님이 내가 근무할 공업단지 관리청 산하 마산수출자유지역관리소 관리과장으로 계셨다. 최 차관님이 1957년 초임사무관시절에 수습고육을 나 과장님께 받은 특별한 관계라는 것은 내가 공업단지관리청으로 전입할 때 기획원 상공예산담당관으로 부터 처음 듣게 되었다.

내가 부임 후 오래지 않아 나 과장님의 전입을 축하한다는 전화가 왔었다. 이미 기획원 직원들에게 들은바 있는 청렴성과 친절성, 그리고 나이도 나보다 대 선배이므로 만나기도 전에 그분에 대한 존경심과 신뢰심은 굳어져 있었다. 알맞게 희끗희끗 흰 머리에 인자하고 친절이 몸에 배어 있었고, 외모에서도 내가 가진 선입관에 대한 확신을 심어 주었다. 그분이 부재 중 비서가 받은 전화내용을 적은 메모지는 반드시 이면지이어야 하고, 4절지를 8등분한 용지가 아니면 혼이 난단다. 사무실에 클립이 나 하잖은 사무용품이 바닥에 떨어져 있으면, 국민의 세금을 낭비한다고 직원들에게 호통을 친다는 소문이 파다하였다. 충분히 그러고도 남을 절약정신과 국민의 공복으로서 나라사랑이 몸에 밴 분이었다.

 

소란의 대상이었던 돈 2마원도 그 분의 성품으로 보아 가족은 생각지도 않고 자신의 봉급에서 예산관계로 관계기관을 더나드는 나를 도와 준 것은 분명해 보였다. 그 후로도 그분은 공직자로서 친절, 청렴, 절약과 공정한 업무로 모법적인 공직생활을 함으로서 나의 공직생활의 Mentor가 되었고 진심으로 그분을 존경하였었다.

 

 

1977년 나도 상공부에서 근무하고 있을 때였다. 당시 최각규 상공부장관은 마산에 근무하는 나 과장님을 상공부 총무과장으로 영전해 오셨다. 내가 존경하는 분이 총무과장으로 오셨으니 가끔 틈을 내어 커피를 마시기도 하면서 각별히 지냈었다.

최 장관님이 나 과장님을 국장으로 승진시키겠다는 생각을 했지만 예상은 빗나갔다. 나 과장님 자신의 자원으로 공직을 그만 두시고 모 협회 상근부회장으로 가셨다. 일 년이 체 못되어 그 분이 협회를 그만 두었다며 처진 어깨를 본 후로는 소식을 알 수가 없어졌다. 협회에서는 그 분의 청렴성과 공정성, 절약성이 오히려 흠이 되어 복마전 같은 협회업무에 적응하지 못해 스스로 그만두었다는 후문으로 들렸다. 청렴하고, 정직하면 융통성이 없다면서, 능력 없는 사람으로 치부하는 일그러진 사회에 적응하지 못하고 스스로 물러난 너무나 애석한 선배였다. 1990년 5월말 내가 명예퇴직 할 때도 나의 Mentor인 그 선배의 심정을 이해하고 절감했었다.

 

 

누가 물러나고 누가 있어야 되는지 그 많은 세월이 흘러간 지금도 그 역할이 뒤 바뀌어 돌아가고 있다. 구조적인 모순과 부정부패의 먹이사설에 얽혀 대형 참사와 사회를 혼란하게 하는 사건이 끝일 날이 없다. 부정과 부조리에 혼탁한 세상, 매스컴에서 부정부패로 얼룩질 때마다 내 생활에 많은 영향을 준 나의 Mentor 그 분의 근황이 궁금했었다.

 

이제는 우리도 부정부패 없는 공정한 선진사회를 만들 지도자가 나오고 국민도 자각 할 때가 된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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