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솜씨/수 필

아름다운 능소화

철산. 케네디 2014. 6. 30. 18:52

 

                                     아름다운 능소화

 

                                                   鐵山   김 종 길  

 

 

 

                                                           

                                    

등산을 가기위해 남한산성으로 가는 버스를 탔다.

대원터널입구 도로경계철망을 타고 올라간 덩굴에 주황색 능소화 꽃이 화려하게 피어 있었다. 황송공원마을 아파트담장에는 더 높이 올라간 덩굴에서 꽃 병풍을 친 것 같이 많은 능소화가 탐스럽게 피어 있었다. 남한산성 입구 광장에는 줄기는 보이지 않으나 가로등 끝자락에 능소화가 한 아름 뭉쳐서 꽃다발처럼 아름답게 피어 있었다.

 

 

 


능소화는 양반집에서만 심는 꽃이라서 그런지 촌놈인 나는 오래지 않는 시기에 그 꽃을 알게 되었다. 더구나 그 꽃에 얼킨 애절한 사랑의 설화를 알면서 내 마음속에 능소 화를 제일 아름다운 꽃으로 자라 잡았고 그 꽃이 피는 7~8월을 간절히 기다리고 있었다.


능소화는 장원급제한 선비의 화관에 꽂았다고 해서 “어사화”라고도 한다. 또한 옛날에는 양반집에만 심었고 평민집에 심어면 양반을 모독한 죄로 관가에 불려가 곤장을 맡기도 해 “양반꽃”이라고도 한다. 겹겹이 담장으로 둘려 쌓인 구중궁궐 안에서 임을 기다리는 소화라는 예쁜 궁녀의 애닯픈 사랑의 전설에서 유래되어 “구중궁궐 꽃” 또는 “능소화”라고도 하며,그 아름다움만큼이나 이름도 많고 사연도 많다. 


옛날 소화라는 예쁜 궁녀가 임금님의 눈에 띄어 하루 밤 성은을 입었다. 그녀는 빈으로 승격되어 구중궁궐 한견 빈의 처소에 살게 되었다. 그 후 임금은 빈의 처소에 한 번도 다시 찾아오지 않았다. 마음씨 착한 빈 소화는 다른 궁녀처럼 권모술수로 임금을 유인할 줄도 몰랐다. 빈 소화는 긴긴밤 사시사철 임금님이 스스로 찾아오기만을 기다렸다. 그 추운 겨울에도 임금님이 오시나하고 구중궁궐 담장 넘어로 목을 빼고 기다리기만 하였다. 그러다 지치면 담장에 귀를 대고 혹시라도 임금님의 발자국 소리를 놓칠세라 밤을 세우다 지처 꽃다운 나이에 상사병으로 돌아 가셨다. 유언에 따라 기다리다 치쳐 숨진 그 담장 밑에 묻었다. 이틈 해 봄에 구중궁궐 그 높은 담장을 따고 넘어 임금님이 오시려나 간절히 바라는 능소화 꽃이 아름답게 피었다. 능소화 꽃잎은 임금님의 발자국 소리를 놓칠세라 귀를 닮기도 했다. 이 꽃은 젊은 빈 소화와 같이 시듦도 없이 활짝 핀 상태로 아름답고 깨끗이 지고 만다. 그리고 임금님 이외에는 아무도 범접을 못하게 꽃을 따서 가지게 되면 꽃이 풍기는 독으로 눈이 멀게 된단다. 빈 능소와 같이 임금님만을 기다리는 애절한 사랑이 쌓이고 쌓여 아름다운 주황색 꽃에는 절개가 묻어난다. 

 


담장이든 철망이든 그 높이 끝까지 올라가 님을 기다리고 그리면서 피어있는 아름다운 꽃 능소화! 임금님만 근접케하고 다른 사람은 눈으로만 감상해야 하는 고귀한 꽃 능소화! 임금님의 은총을 받은 “영광”과 임금님만 그리다 목숨을 바친 애달픈 사랑이 오히려 “영예”란 꽃말이 되었단다. 아름답고 슬픈 사연을 품고 있어 알듯 말 뜻한 꽃말이 오히려 신비스럽다. “능소화” “어사화” “양반꽃” “구중궁궐 꽃” 그 이름만큼이나 아름답고 고상한 꽃을 나는 가장 사랑하기로 자리매김한 것은 그 꽃과 애절한 설화를 알고부터다. 


얽히고설킨 부적절한 사랑이 드라마와 영화를 힙 쓸고 있는 오늘의 세태에 그 아름다움만큼이나 애달픈 사랑의 설화가 유별나서 나는 능소화을 사랑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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