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솜씨/수 필

저 아름다운 벚꽃도 분노의 대상 이었다

철산. 케네디 2013. 5. 7. 00:11

 

 

 

                                               저 아름다운 벚꽃도 분노의 대상 이었다

                                                                                                김 종길

 

 

 

진해나 서울 여의도 벚꽃 못지않게 야탑역 부근 여수천의 벚꽃도 4월 중순이면 아름답게 피었다. 양쪽 개천가 평지에는 물소리에 깨어난 버들강아지가 봄을 알리고 있다. 보행로 옆 경사진 둑에는 삼단 같은 머리채를 한 노란 개나리꽃이 아름답다. 그 뒤에는 한 줄로 열을 선 벚꽃 나무에 현란한 꽃이 너무나 아름답다.

 

 

 

 

 

 

벚꽃의 아름다움을 처음 본 것은 초등학교 입학하든 해였다. 4월초 운동장 둘레에 50여 그루의 큰 벚나무에 핀 꽃을 보고 그 아름다움에 감탄했었다. 그러던 그해 8월 어느 날 그 거대한 벚꽃 나무가 하루아침에 베어져 황량한 운동장으로 변했다. 어린 나이에 그 이유도 사연도 알 수 없었고, 난 생 처음 그 아름다움을 본 내 새가슴에 슬픔과 의문투성이로 변했다. 얼마 후 그 벚꽃나무가 베어진 이유를 알고도 한동안은 벚꽃의 아름다움을 잊을 수가 없었다. 벚꽃이 분노의 대상이 되어 무참히 베어졌다는 것을 알기에는 너무 어렸든 것 같았다. 그해 8월 15일 36년의 잃었던 조국이 해방이 되었다. 남녀노소 너도나도 태극기를 들고 면사무소와 지서를 돌며 대한독립독립만세를 외치고 다녔다.

 

 

당시 아버지는 외가와 우리 집을 오가며 보국대를 피해 다녔다. 집에는 쇠로 된 밥 그릇, 숟가락 까지도 전쟁 물자를 만드는데 공출하고 없었다. 그 것뿐만이 아니었다, 학생들에게 기름을 짜기 위한 관솔을 캐 오게 하였고, 선생님의 독촉에 400미터나 족히 되는 고개넘어 이팝열매를 따려갔는 가하면 피마자를 가져가기도 하였다. 우리에게 우리말과 글을 못 쓰게 하였으며, 우리의 정체성인 이름마저 일본이름으로 바꾸게 하였으니 어른들의 수모는 이루 말할 수 없었다. 젊은이는 군에 강제로 입대시켜 수많은 청년이  일본의 동남아 침략전쟁에 명분도 없이 이국땅에서 전사하였다. 중년은 강제로 동원되어 군수공장, 전쟁물자 운반, 군사시설공사에 투입되어  혹사하거나 굶어 죽었다. 특히 꽃 같은 우리의 누이 들이 위안부로 끌려가 강제로 당한 그 수모는 천인공노할 정도로 분노와 증오가 하늘에 차 있었다. 삼천리 방방곡곡 집집마다 부모와 형제자매를 잃거나, 수 많은 수탈과 피해, 억압, 내일을 기약할 수 없는 공포분위기였다.

 

나라 잃은 서러움이 극에 달해 있을 때 해방이 되었으니 만세소리가 천지를 진동했었다. 그리고 벚 꽃나무가 하루아침에 베어지는 것도 분노의 폭발이었으니 누구도 반대할 수 없는 당연한 일이였다.

 

 

 

지금은 전국에 방방곡곡에 벚꽃나무가 유원지나 길가 가로수로 심어져 있다. 벚꽃은 봄의 대표적인 꽃이 되었고 가족이나 연인들의 나들이의 명소가 된 곳도 많다. 나는 건강을 위하여 여수 천을 자주 걷는다. 특히 4월초에서 중순까지는 개나리와 벚꽃이 활짝 필 때는 그 아름다움에 취해 즐거운 발걸음이 더욱 가볍다. 집에서 약 30분 거리라 운동하기에 적당하다. 왕래하는 사람이 적어 사색하면서 걸을 수 있어 좋다. 물소리를 들으면서 운치 있게 만들어진 보행로와 개나리, 벚 꽃나무, 잣나무가 늘어서 있어 걷기에 안성맞춤이다.

 

 

 

 

벚꽃나무는 우리나라 산에 자생하는 아름다운 토종 꽃이다. 그러나 원수 같은 일본의 國花라는 이유로 해방 당시 분노의 대상이 되어 일본인을 대신해 수모를 당한 샘이다. 지금도 일본은 선진국답지 않게 아직도 과거사 문제, 위안부 문제, 독도문제 등 우리국민을 극도로 자극하고 있어 또 한 번의 아름다운 벚꽃이 수난을 당 할가봐 걱정이다.

 

                                                                    

                                                      학국작가 제37호 (2013년 가을호)

                                                            217~219면 게재된 작품

                                                                 

 

 

 

 

 

 

 

 

 

 

 

 

 

 

 

계간  한국작가 213년 가을호 (217 ~ 219면 게재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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