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이 정말 싫었는데 / 김종길
나는 어려서 매일 같이 새벽이면 산에 올라 가 나무 짐을 지고 오는 것이 일과였다,
우리나라는 60년대 중반까지는 땔감이 나무였고 산골에서는 읍내에 나무를 팔아야 생활비와 월사금을 보탤 수 있었다. 그러기에 초등학교 고학년이 되면 틈만 나면 나무를 하는 것이 일상이었다. 특히 농사일이 한가한 겨울에는 먼동이 터기 전 꼭두새벽에 산에 올라가 힘겨운 나무 한 짐을 져다 놓고 학교에 갔었다. 경사진 산비탈 길에 미끄러져 나무 짐과 같이 넘어져 뒹군 일도 한두 번이 아니었다. 짚신 아니면 검정고무신에 입은 옷이 허술하였다. 새벽의 산바람은 왜 그리도 모질게 추웠는지 산에 가는 것이 몸서리가 났었다. 도시생활을 하면서도 산이라면 고통스러웠던 나무 짐이 연상되어 산이란 말 자체가 듣기도 싫을 정도였다.
60년도 후반 공무원생활을 과학기술부 산하인 국립지질조사소에 근무하게 되었다. 당시 광물자원조사는 대통령의 특별한 관심사항 이었다. 그래서 서울대 지질하과를 나온 엘리트 직원 들이 전국의 산야를 누비며 광물자원을 조사하고 다녔다. 이들은 등산배낭에 정밀지도와 나침반등을 구비하고 다녀야 하므로 영락없이 간첩으로 오인받기 십상이었다. 간첩이 준동하든 때라 사전에 관할 경찰서에 지질조사계획을 통보하고 협조공문을 보냈으나 포상금이 걸린 주민들의 간첩신고에는 소용이 없었다. 더구나 출장자는 완벽한 공무원 신분증을 준비하고 떠났었다. 그러나 “간첩은 신분위장을 완벽하게 하고 다닌다.”는 파출소 경찰들의 위협에는 할 말이 없었단다. 관리과에 근무하는 나는 간첩 아닌 간첩사건의 뒤치다꺼리에 골치 아픈 일거리가 되었다. 특히 휴일에 사건이 일어나면 통신과 교통이 불편한 그 당시에는 해결이 복잡하였다. 때로는 지방까지 내려가서 신병을 인수하는 일이 자주 일어났었다. 어릴 때 나에게 고통을 준 그 산이, 공직에서도 스트레스를 주니 산이라면 더더욱 진저리를 낼 수밖에 없었다. 오랜 직장생활을 하면서 친구 따라 설악산, 지리산 등 웬만한 산은 다 가기는 했어도 산에 대한 내 고통스런 잠재의식을 말끔히 씻을 수가 없었다.
그러던 내가 나이가 50대 중반을 넘어가면서 건강에 관심을 가지고 운동의 필요성을 느끼게 되었다. 때마침 도시민들의 등산 붐을 타면서 서서히 주변의 산으로 눈을 돌리게 되었다. 특히 나이가 들면서 산속에 있는 두메산골 내 고향을 잊을 수가 없었다. 고향을 생각하면 고통과 추억이 얼 킨 그 산이 내 뇌리를 먼저 스쳐 갔다. 그리고 주변이 산으로 둘려 쌓인 과천과 남한산성 밑에 살면서 산이 내 고향 어머님의 품같이 포근함을 느끼게 되었다. 특별히 좋아하는 운동이 없는 나는 산이 노화되어 가는 나의 육체와 공해에 찌들어 가는 건강을 위하여 최선의 선택이 등산이기도 하였다. 그래서 지금은 어릴 적 동내 뒷산을 오르내리듯 부담 없이 남한산성을 오르내리는 등산을 좋아하게 되었다.
특히 산은 생명의 원천이요 건강을 위하여 필수적인 맑은 공기와 약수 물, 그리고 햇빛이 있어 좋다. 특히 남한산성은 주어진 시간에 알맞게 등산을 할 수 있어 틈만 나면 산에 가는 것이 습관화 되게 만들었다.
산은 맑은 공기와 건강에 좋은 피톤치드의 보고다. 오염된 공기에 멍들어 가는 심폐기능을 회복하는데 최선의 방법이 맑은 공기가 있는 숲이 우거진 산을 자주 오르는 것이다. 또한 남한산성은 유독 천연수가 솟아지는 약수터가 많아서 좋다. 약수 물은 살아 있는 모든 동식물의 생명의 원천이다. 물은 신진대사를 촉진하고 발암물질의 농도를 낮추어 암도 치유할 정도로 건강의 필수요소다. 등산길에 노폐물과 땀을 흠뻑 흘리고 약수터에 시원한 물 한잔은 정신건강에도 더할 나위 없이 좋은 생명수다. 그리고 우거진 숲 등산길에 간접 햇빛은 모든 생명의 근원이며 비타민 D를 합성한다. 비타민 D는 행복의 호르몬이라 불리는 세로토닌 분비를 촉진하고 살균작용을 함으로 등산의 가치를 더 해 준다.
등산은 공기와 물 그리고 햇빛이 있어 인간의 질병에 대한 치유능력향상에 필수적인 자연이 주는 천혜를 누리는 방법이다. 또한 등산은 적당한 운동과 등산 후 달콤한 휴식은 삭막하게 살아가는 도시인의 건강과 즐거운 장수를 바라는 노인들의 건강유지의 비법이다. 특히 뜻 맞는 친구 두세 명과 같이 하는 등산은 삶을 윤택하게 하는데 더 할 수없는 즐거움이다.
요란한 차림과 등산준비를 해야 하는 장거리 등산보다 돈 안 들이고 간소복과 운동화만으로도 등산을 할 수 있는 내 고향 뒷산 같은 남한산성이 있어 즐겁고 행복하다.
한국작가동인 시화집 제7집(2013년)
별빛 담긴 호수. 133~135면 게재된 작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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