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으시며 사신 어머님 감사합니다 참으시며 사신 어머님 감사합니다 鐵山 김 종길 “어머니 밭에 나가 일하지 마세요. 힘드시잖아요 ” “심심한데 집에서 놀면 무엇 하나, 소일도 하고 푼돈도 만지니 안성맞춤이지” 나는 어머니의 속도 모르고 남의 밭에 가서 일하는 것이 싫어서 면박을 주곤 하였다. 1978년 막냇동생이 .. 나의 솜씨/수 필 2015.05.15
앉은뱅이책상 앉은뱅이 책상 김 종길 여기가 내 고향인가, 산천초목과 가까운 친척이외는 낮익은 사람도 없다. 그렇게 다정하던 친구들도 없고 모두가 낮설은 산골, 여기가 내가 태어나고 자란 꿈에도 잊지 못하던 고향이란 말인가 싶다. 고향을 갈 때마다 어릴 때 대청마루와 옆방을 지나 한평반 남짓.. 나의 솜씨/수 필 2015.03.24
학생에게 행복한 교육을 (칼럼) ' 학생에게 행복한 교육을 鐵山 김종길 교육은 백년대계다 교육은 국가와 사회, 가정 및 학생의 장래를 결정짓는 기본요소이다. 교육의 실행은 정부의 교육정책과 학생을 가르치는 학교, 학생과 학부모가 상호 깊은 관계가 있다. 교육은 정치, 경제, 사회, 문화의 모든 분야와 연관되어 언.. 나의 솜씨/수 필 2015.03.21
성남에 살어리랏다(5) 성남에 살어리랏다(5) -성남에 살아 온 보람- 鐵山 김종길 1989년 9월초 을지연습(CPX :Command Post Exercise)평가관으로 대전직할시에 출장을 갔었다. 기관을 대표한 공식출장임으로 시장님을 예방하는 것은 당연한 관례였다. “아 이거 얼마만입니까?” “김 회장님 정말 반갑습니다.” 10여년 .. 나의 솜씨/수 필 2015.03.11
잊지 못할 烈夫 내 친구 잊지 못할 烈夫. 내 친구 김 종 길 “회장님 노후는 내가 책임지겠습니다.” 그는 예순이 지난 후 나를 만날 때 마다, 5년간 봉사모임에 회장을 한 나에게 입버릇처럼 하고 다닌 말이다. 그 친구 부인은 평생지병에다 가정형편이 나보다 훨씬 어려웠다. 그러나 그의 말은 진심이었고 확신.. 나의 솜씨/수 필 2015.01.21
태클을 걸지마세오 (1~4) 태클을 걸지 마세요(1) - 졸업식 답사- 1962년 3월 군에서 제대를 하고 시골에 농사를 돕고 있었다. 그 해 가을 동아일보에 9급 공무원시험 공고를 보고 응시했었다. 경남지역 시험장인 부산의 토성초등학교의 응시자만 5000명이 넘어 보였다. 당시 보통고시, 고등고시 시험은 있었지만 9급(당.. 나의 솜씨/수 필 2015.01.03
여수천 찬가 여수천 찬가(麗水川 讚歌) 鐵山 김 종길 오늘도 야탑역 전철을 타기 위하여 여수천을 따라 내가 좋아하는 18번 '종이배'를 콧노래로 부르며 신나게 걸었었다. 내가 여수천을 걷는 것은 나 자신을 위함뿐만 아니라 여러가지 이유가 있다. 그 중에 가장 큰 이유는, 두메산골 내 고향(密陽 上.. 나의 솜씨/수 필 2014.11.19
성남에 살어리랐다 (4) 성남에 살어리랐다 (4) -형제보다 더한 우정- 사람이 살면서 피를 나눈 부모 자식과 형제간의 우애는 인륜이고 천륜이다. 그러나 부모 형제간에도 돈과 재산에 얽히면 천륜과 인륜이 무색할 정도로 소송을 하고 인연을 끊고 사는 경우도 많다. 가끔 매스컴에 부모가 돌아가시면 재산문제.. 나의 솜씨/수 필 2014.10.26
성남에 살어리랏다 (3) 성남에 살어리랐다 (3) -직급을 따지면 회원이 아니다- “우리는 똑 같은 회원이므로 누구든 직급과 직명을 부르면 회원이 아니다“ 내가 재성남중앙공무원회 회장으로 추대되면서 이 말이 첫 인사였다. 공무원은 업무자체가 국가와 국민을 위한 봉사자로 직무와 관련된 사람 외에는 친.. 나의 솜씨/수 필 2014.10.26
행복은 마음속에 피는 꽃이다 행복은 마음속에 피는 꽃이다 鐵山 김 종길 아침신문에 나태주 시인의 “행복”이란 시를 소개한 것을 보았다. “ 저녁때/ 돌아갈 집이 있다는 것 힘들 때/ 마음속으로 생각할 사람이 있다는 것 외로울 때/ 혼자서 부를 노래가 있다는 것“이 행복이란다. 나는 뒤통수를 얻어맞은 충격과 .. 나의 솜씨/수 필 2014.10.21